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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불구경

hherald 2010.11.01 19:12 조회 수 : 3545

 

'수수방관(袖手傍觀)'이란 말이 있다. 소매에 손을 넣고(수수:袖手) 곁에서 바라보기만 한다(방관:傍觀)는 뜻이다. 옛날 옷은 주머니가 거의 없어 소매가 주머니 역할을 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거나 날이 추워 손이 시리면 소매에 손을 넣었다. 손을 소매에 넣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그 자세로 그냥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바로 옆에 큰일이 있어도 해결하려 덤비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말한다.

 

 

비슷한 속담이 강 저편에서 불이 난 것을 서서 구경하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강 저편에서 불이 났으니 내게 피해가 올 리 만무한 '나하고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일'을 뜻하지만, 속뜻은 자기와 관계가 있는 일도 마치 남의 일처럼 여긴다는 말이다.

'

수수방관'이나 '강 건너 불구경'이나 무관심을 뜻하지만 자신과 관계있는 일에 무관심하거나 자신이 뛰어들어 해결해야 할 일에 나 몰라라하는 자세를 비꼬는 의미가 짙다.

혹자는 사회 구성원이 그 사회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그 사회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정치적인 면을 예로 들어 개인의 참여가 없어도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관심이 지나치면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 일이 없는 아집이 된다. 극단적으로 높은 관심은 극단적인 당파성이 된다. 이 당파성은 열광한다. 열광한 당파성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우리 패거리만 살아남자고 열광한다.

 

그래서 관심이 모두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고, 무관심도 늘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한인사회를 보는 한인들의 무관심을 딱 잘라서 좋다거나 나쁜 현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무관심에도 양과 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인사회에 눈 감은 한인들의 무관심이 어떤 무관심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불구경하는 자세로 있을 수밖에 없는 좌절과 환멸의 무관심이라면 한인들의 무관심은 충분히 문제가 된다. 지금 한인들의 무관심은 그 무관심을 가져온 좌절과 환멸의 근원이 무엇이었던가를 봐야 하는 문제가 있다. 무관심하지 않았던 이를 수수방관하는 이로 바꾼 요인이 있다. 지금 무관심은 바로 개인적인 문제를 한인사회의 문제로 확대시킨 인물들이 만들어낸 좌절과 환멸의 무관심이다.

 

 

'굴절적 무관심(屈折的無關心)'이라는 말이 있다. 한인사회에 빗대 설명한다면 본래 한인회와 한인사회에 관심이 있었는데 늘 싸움만 하고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 환멸을 느끼고 그로 말미암아 한인사회에 관심이 얕아져 버린 경우를 가리킨다. 이런 경우는 긍정적인 관심으로 다시 바꿀 수 있다. 관심이 굴절된 요인을 제거하면 된다. 늘 싸우는 사람들이 관심을 앗아 갔으니 그들이 없으면 한인들의 관심도 돌아오게 된다. 지금 한인들의 무관심은 굴절적 무관심이다. 한인들을 불구경하도록 만든 장본인만 없다면 무관심도 사라진다.

 

 

그래서 이번 한인회장선거는 결코 불구경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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