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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대통령의 명절 선물

hherald 2010.09.20 17:29 조회 수 : 1926

 


1970년대 중반 매주 영국 스탠스테드 공항에는 아프리카에서 온 특별기가 도착했다. 우간다에서 온 이 비행기는 누구를 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스카치위스키를 가득 싣고 우간다로 돌아갔다. 위스키를 사간 사람은 역사에 엽기적 독재자로 길이 남은 이디 아민. 그는 권좌에서 쫓겨난 1979년까지 영국의 위스키를 계속 사서 날랐다. 우간다 군인에게 선물로 지급되던 영국산 위스키는 이디아민에게는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필수품목이었다.

 

 

대통령의 선물. 명절이 되면 유독 대통령의 선물에 관심이 쏠린다. 공식적인 대통령의 명절선물을 살펴보면 박정희 시대부터 나온다. 이런 군사정권 시절에 대통령의 선물을 받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한 특권층이었다. 대통령의 명절선물을 받는 것은 특권층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그래서인지 선물에도 주는 이의 보스 기질이 다분히 보인다.

 

 

박정희 대통령은 인삼이나 수삼을 즐겨 보냈다. 인삼을 담은 상자에 봉황문양이 새겨져 있어 '봉황인삼'이라고 불렀는데 이 상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당대의 '실세'임을 증명하는 표식이 됐다. 전두환 대통령도 이를 따랐다. 수삼을 빼고 인삼만으로 황금색 '봉황인삼' 상자를 만들어 자신이 직접 관리해야할 정치인과 군인 등 일부 사람에게만 돌렸다. 이들이 인삼을 좋아한 것은 '주인'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봉황인삼을 받은 이에게 충성을 요하는 의미가 담겼던 것이다.

 

 

인삼도 좋지만 역시 한국의 역대 군사정권에서 가장 실속있는 선물은 '떡값' 돈뭉치였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떡값’이란 명분으로 거액의 현금을 명절 선물로 돌렸다. ‘돈 선거’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 이만큼 좋은 선물이 없었다. 국회의원에게는 활동비로 200만 원씩, 핵심 인사에게는 1,000만 원씩 돌렸다. 이 정도 돌리는데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해마다 명절 때면 활동비 명목으로 지급했다는데 이쯤 되면 위스키를 돌린 이디 아민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이런 명절선물 문화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확 바뀌지만 정치를 시작해서부터 대통령이 된 뒤에도 줄기차게 거제도산 멸치만 보내다 보니 특정지역 생산물만 고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 멸치'로 홍보된 거제도산 멸치가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 구설에 오르지 않게 선물 선택에 신중했고 매우 소박한 선물을 보냈다. 특정지역의 생산물을 고집하지 않았고 못 받은 사람이 서운해한다고 선물을 받을 대상과 인원을 대외비로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취임 후 첫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아무 선물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노 대통령은 명절만 되면 국회 의원회관이 선물 택배로 북새통을 이루던 현장을 목격했고, 선물이 뇌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 특단이었다. 그런데 명절 떡값의 단맛을 아는 보수 언론과 야당이 명절에 선물을 돌리지 않는 것은 국민 정서에 반한다며 반발했고 명절에 한 몫 잡으려는 관련업계도 덩달아 노 대통령을 성토했다. 2006년 추석 때, 노 대통령은 고심 끝에 명절 선물을 골랐지만 집중호우 피해자와 소년소녀가장에게 차와 다기세트를 선물로 보내 보수언론이 맞지 않는 선물을 보냈다고 비꼬았다. 물론 쌀과 생필품을 다시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지역화합’의 의미를 담아 올해 추석 선물로 전국 각지의 농산물 9종이 들어 있는 농산물 세트를 선택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도 ‘국민화합’의 의미로 9개 도에서 생산되는 대표차와 다기 세트를 선물한 바 있다. 선물에 담긴 의미가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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