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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운명을 다한 돈, 어디에 쓸꼬?

hherald 2012.02.27 18:59 조회 수 : 2063



헝가리에서 못쓰게 된 지폐를 압축해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노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땔감용으로 공급했다. 헝가리는 빈민율이 30%로 유럽에서 사정이 어려운 나라에 속한다. 난방비가 걱정인 어려운 가정에서 이 돈 땔감으로 꽤 많은 난방비를 절약하고 있다. 어쨌거나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 셈인데 폐지폐의 재활용 사례가 됐다.

헝가리의 화폐 단위는 '포린트'다. 포린트는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도 현재까지 쓰이는 유일한 화폐다. 헝가리는 1차 세계 대전까지 '크로네'를 쓰다가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단위를 '펭괴'로 바꿨다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1조의 10억 배인 10해 펭괴 지폐가 발행될 정도로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으로 새 통화 단위인 포린트를 만들었다. 당시 1포린트가 40양 펭괴였다는데 '양'이란 단위는 만, 억, 조, 경, 해, 자, 양... 이런 식으로 수의 단위가 나가니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구권인 크로네나 펭괴는 엄청난 양이었을 텐데 어떻게 재활용했다는 기록이 없다. 단지 헝가리에서 못 쓰는 지폐를 땔감으로 만든 것이 4년 전부터라고 하니 그래도 포린트는 죽어가면서도 돈값을 하고 있다. 조만간 포린트가 유로화로 대체되면 더 많은 땔감으로 재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의 통용에 따라 화폐가 바뀐 유럽의 국가들은 폐기될 운명에 놓인 자국의 구화폐를 여러 방법으로 재활용했다. 그중에서 독일은 마르크화 지폐를 재처리해 공업용 알코올을 뽑아냈다. 폐기물 재처리공장에서 잘게 썬 마르크화 지폐로부터 메탄올을 추출했다고 한다. 유럽 다른 나라들도 폐기된 자국 화폐를 화장지 등으로 재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지폐를 재활용한다. 지난해 폐지폐를 활용해 지폐 보관용 봉투를 만드는 기술도 개발됐다. 지폐라고 소재가 종이인 줄 알지만 우리나라 지폐는 면(綿)으로 만들어져 녹이면 단단하게 변해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한해 5t 트럭 약 500대 분 정도의 지폐가 손상되는데 액수로 13조 원이 넘고, 장수로는 20억 장, 높이 쌓으면 백두산의 72배나 되는 양이다. 운명을 다 한 지폐는 대형 분쇄기에서 잘게 썰어져 주먹 크기의 압축 덩어리로 변해 또 한 번의 공정을 거쳐 자동차용 방진, 방음용 패드가 되고 건물의 바닥재가 된다. 바닥재 한 개 만드는데 만 원권 지폐 4,8kg가 들어가니 액면가로는 4.000만 원이 넘는 최고급 바닥재를 한국인들은 사용한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헝가리에서는 얼마짜리 땔감을 때는 것일까.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 가면 폐지폐로 만든 의자가 있다. 한쪽은 만 원권으로 만들었고, 다른쪽은 천 원권으로 만들었는데 색깔만 다를 뿐 앉아본 사람의 말로는 두 의자가 차이가 없고 모두 일반 의자와 느낌이 같다고 한다. 내가 너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나?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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