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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면죄부 略史

hherald 2011.11.28 18:39 조회 수 : 1888





루터가 1517년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라틴어로 써서 바텐베르크 교회에 붙일 때 이 반박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라틴어를 몰랐기에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리고 루터는 면죄부 자체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가 95개조의 반박문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개축을 위해 당시 독일 지역에서 팔리고 있던 면죄부의 부당성이었다.

당시 독일에서 팔리던 면죄부가 왜 문제가 됐는지 간단하게 살펴보면 대주교로 임명된 사람이 레오 10세 교황에게 낼 돈이 부족해 돈 많은 상인에게 돈을 빌리고 그 돈을 갚으려고 다시 교황의 허가를 받아 면죄부를 판매한 것이다. 처음부터 꼬여 있었다. 이 면죄부는 상인의 돈벌이용이요, 대주교의 채무변제용이요, 교황의 사치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면죄부 판매 대리인의 한 사람인 요한 테첼이란 사람이 신자를 많이 기만하며 극성스럽게 판매했다. 뛰어난 대중 연설가였다는 그는 “금화가 헌금궤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연옥을 벗어나 하늘나라를 향해 올라가리라”하며 신자를 현혹했다. 당시 이 말이 대단한 유행어였는지 이 말을 그대로 옮겨 비판한 대목이 루터의 반박문에 있다. 그는 성서의 구절을 면죄부 판매에 맞춰 인용하고, 연옥에서 당신들의 부모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식의 감정적 호소로 판매에 열을 올렸다. 당시 면죄부를 파는 판매 대리인은 판매하는 만큼 수수료를 챙겼는데 그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면죄부 판매왕이 되려고 극성을 떨었다.

면죄부 판매에 대한 비판은 루터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지에 깨어 있는 사람이 이를 비난했다. 그리고 면죄부는 루터 이전 시기부터 있었다. 로마교회에는 원래부터 헌금을 받고 죄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대부분 1차 십자군 원정 때부터 성행했을 것으로 본다. 1096년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목의 십자군 원정이지만 그 먼 길을 쉽게 떠날 이가 없었다. 그러자 교황은 범죄자와 천민을 이 험한 원정에 참여시키고 그 대가로 면죄부를 줬다. 원정에 참가하면 죄가 사면되고 빚이 없어지니 기꺼이 참가했다. 1차 십자군 원정군은 범죄자가 많은 군대였고 면죄부가 남발되는 계기가 됐다.

루터가 독일에서 극성스럽게 팔리던 면죄부를 비판한 것이 1517년, 1차 십자군 전쟁부터 약 500년 뒤니까 관행처럼 면죄부를 팔아온 교황청의 잘못이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사람이 루터 이전에도 많았다. 루터의 비판이 중대한 역사적 전환이 된 것은 때마침 발달한 인쇄술의 영향이기도 했다. 라틴어로 써 붙인 그의 반박문을 읽을 사람이 적었는데 독일어로 번역돼 퍼지자 그 파장이 이루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된 것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교과서에 '면죄부(免罪符)'라는 용어 대신 '대사(大赦)'를 사용해 달라는 요청을 할 계획이다. 면죄부는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주는 '대사'( indulgence)의 오역이라는 것이 주교회의 측의 설명이다.

면죄부는 아직도 천주교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큰 과오다. 그런데 물질로 죄를 상쇄한다는 면죄부가 지금 어느 종교에서 어떻게 현대판 면죄부로 바뀌어서 신자를 현혹하는지도 봐야할 문제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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