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은 '쿠데타'다. 사전에 ‘5·16 군사정변’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언론과 일부 단체의 의심스러운 저의를 보면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못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재수 없는 불안감이 온다. 그럴 리야 있을까마는. 마치 현대판 홍길동전처럼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못하는.
지난 3월 KBS가 뉴스에서 ‘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보도했다. 앵커가 <올해는 5·16 군사혁명 5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라고 했고, 기자도 <4·19혁명 이후 정국 불안이 한창이던 1961년 5월 16일 새벽, 당시 박정희 소장과 일부 군인들은 서울의 주요기관을 단숨에 점령하고 혁명에 성공합니다>라고 사전 상의 ‘정변’이 아닌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5·16 군사혁명, 5·16 쿠데타>라고 하는 일이 벌어진 지 50주년을 맞아>라며 마치 혁명을 혁명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듯 그날 KBS 뉴스는 1970년대로 되돌아갔다.
5·16은 혁명이 아니다. 혁명이나 쿠데타나 모두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잡거나 국가나 사회의 조직 형태를 바꾸는 것은 맞지만 혁명은 민심이 기반이 된 광범위한 세력의 사회 변혁 투쟁이며, 쿠데타는 지배층 내부의 권력 투쟁일 뿐이다. 또한, 혁명이냐 쿠데타냐는 그 결과 혜택을 받는 이들이 민중을 기반으로 한 광범위한 세력이냐 아니면 그것에 가담한 일부만이 나눠먹는 것이냐 따라 나뉜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과연 혁명으로 부를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5·16 군사정변, 5·16 쿠데타'라는 개념을 당연하게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개념을 흔드는 일, 즉 5·16이 왜 혁명이 아니냐고 생트집을 잡는 일이 수시로 있었고 몇 해 전 뉴라이트는 기상천외의 역사교과서 시안을 소개하면서 '4·19 혁명'을 '4·19 학생운동', '5·16 군사쿠데타'를 '5·16 군사혁명'으로 바꿔 표기한 교과서를 만들자고 했다. 뉴라이트는 <일제의 침략이 조선의 근대화를 가져왔다>고 믿으며 교과서를 만들었다. 하긴 이 교과서는 전두환을 <발전국가를 계승했다>고 적고 있는데 더 설명하는 게 사족이다. 그렇지만 <일제 침탈→근대화, 쿠데타→혁명>이라는 두 개의 큰 틀이 박힌 뉴라이트가 홍길동전처럼 <왜 혁명을 혁명이라 부르지 못하냐>라는 생트집은 집요하다.
이런 생트집에 일부 언론이 힘을 보태고 있다. '5·16 50주년'이 거창한 기념일이 되는 양 조선과 중앙이 쿠데타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종필을 인터뷰하면서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김종필의 입을 통해 5·16을 혁명으로 지칭한다. 김종필의 주장은 <쿠데타는 같은 계층에 있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 혁명은 민심을 기초로 아래서 일어나 권력을 바꾸는 것, 그래서 5·16은 혁명이다>라고 한다. 나 원, 4·19 이후의 민심이 군사독재였던가. 그런데도 조선과 중앙은 '5?16은 서민층이 지지한 혁명', '5?16은 4?19정신을 계승한 혁명'이라며 쿠데타를 혁명이라 부르고 싶어 안달이다.
5·16은 '쿠데타'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던 당시의 명분은 그 후 18년 독재로 더는 미화될 수 없다고 들통 났다. 홍길동처럼 <혁명을 혁명이라 부르지 못하고>라며 징징거리지 마라. 5·16은 '쿠데타'다. 혁명이라 부를 가치가 없는 '쿠데타'다.
헤럴드 김종백 haninher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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