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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11월 11일의 야단법석

hherald 2011.11.14 19:04 조회 수 : 1922



지난 11일은 말 그대로 야단법석이었다. 우선 100년마다 한 번 오는 11년 11월 11일이 1000년에 한 번 있는 밀레니엄이라고 이상하게 격상되었다. 2011년처럼 2111년이나 2211년도 11월 11일이 되면 11이 세 개 겹친다. 

어쨌든 이렇게 의미가 격상된 이날을 맞아 태어날 아이의 주민번호 앞자리를 111111로 만들려는 예비 부모들은 출산 예정일을 이날로 당겼다. 한국의 산부인과에는 평소보다 제왕절개 예약이 30%나 늘었다. 무리한 조산으로 산모의 건강을 해치고 일찍 태어난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더 오래 머물게 되는 위험쯤은 감수했다. 주민번호 111111이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젊은 부모의 심각한 판단에, 숫자 1이 6번이나 들어가 모든 면에서 1등으로 자랄 것 같다는 ‘1등’, ‘최고’, ‘유일한’ 같은 것만 강요당한 젊은 부모들의 한풀이에 이런 세태를 그냥 웃어넘기기도 어렵다.

유아용품 매출도 이날 크게 올랐다. 이날 아이를 낳으니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젖병과 기저귀를 사서 들여다봐야 했다.

숫자 1을 선호한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산부인과에도 11월 11일에 출산하겠다는 산모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이야 당연히 야단법석이었다. 인구가 많으니 결혼식이 줄을 이었다. 같은 날 결혼식이 겹치니 어느 결혼식에 가야 하는지 하객만 곤욕을 겪었다고 한다.

111111을 모두가 행운으로만 본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집트에서는 기자 지역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11일 문을 닫았는데 111111의 영향이라는 추측이 난무한다. 다른 2개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기자 지역의 다른 유물들은 이날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됐지만 유독 피라미드를 둘러싸는 행사를 가질 테니 허가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쿠푸왕의 피라미드만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문화재 당국은 시설 관리 차원에서 11일 폐쇄한다고 했지만 `2011년 11월 11일 오전 11시 11분'을 기한 특정 집단의 종교의식과 연관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의 야단법석에 정점을 찍은 것은 롯데제과다. 천 년에 한 번 온다고 뻥을 쳐 속된말로 노났다. 아예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고 홍보해서 예년 빼빼로 데이보다 47%나 더 팔았다. 청소년의 주머니를 노린 이 상술은 이제 제대로 먹혀 발렌타인 데이 못지않은 이상한 기념일의 하나로 굳어지는 느낌이다. 빼빼로 과자 포장지가 어린이 키만한 제품까지 나왔다.

정작 11월 11일은 정부가 정한 농민의 날이었다. 빼빼로라는 과자가 아니라 가래떡의 모양을 딴 농민의 날이다. 정작 11월 11일의 주인공은 이날 한숨만 쉬는데 온 나라가 딴 데 정신 팔려 말 그대로 야단법석이었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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