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와 산토끼. 이 말은 정치에서 흔히 하는 얘기다. 집토끼는 이미 내 집안에서 기르는 동물로 우호적 지지 세력을 뜻한다. 산토끼는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세력을 말한다. 우리나라 현실 정치에 대입해보면, 영남표는 새누리당의 집토끼, 호남표는 민주당의 집토끼인 셈이고, 수도권은 여야 모두가 목표로 하는 산토끼에 비유할 수 있다.
속담에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산토끼를 잡으려면 집토끼는 반드시 포기해야 하고, 토끼 두 마리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생물학적으로도 집토끼와 산토끼는 교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집토끼와 산토끼는 유전자 수가 달라 생물학적 분류상 다른 '속'에 속한다. 개와 여우는 같은 개과에 속하지만 개속, 여우속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여우가 많은 영국에 개와 교배한 잡종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사자와 호랑이는 교배가 되는데 이 둘은' 표범속'으로 같다.
집토끼는 유럽 중부로부터 남부와 북부 아프리카에 분포되어 있는 굴토끼를 가축화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보는 토끼가 여기에 속한다. 모피를 얻기 위해, 고기를 먹으려고, 귀여워 애완용으로 키우려고 가축화한 것이다. 반면에 산토끼는 초원이나 삼림에 서식하는 야행성 동물로 낮에는 풀숲이나 덤불, 바위 그늘 같은 곳에 숨는다. 나무껍질이나 어린싹, 풀 등의 식물을 먹고 산다. 한국에는 야생 굴토끼가 없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라는 동요에 나오듯 산토끼만 있다.
장황하게 집토끼와 산토끼 얘기를 한 것은 정치에 있어 이것이 가장 심각한 딜레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짚고 싶어서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집토끼를 결속하는데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산토끼를 잡으러 나가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 한다. 일반적인 전략은 집토끼를 최대한 확보해 놓고 다음에 산토끼 사냥을 나가는 것이지만 지금 잡아놓은 집토끼도 완전한 내 토끼가 아니니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하느냐 집토끼의 한계를 극복하고 외연 확대를 해야 하느냐의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상황과 비유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지금 영국의 한인사회도 새로운 한인회장이 나와 집토끼와 산토끼의 고민에 잠겼으리라 판단된다. 지난 몇 년간 이전투구로 우호적이었던 집토끼마저 모두 등을 돌린 마당에 이제 과거의 집토끼부터 끌어모을지 새로운 산토끼를 찾아 나서야 할지 고민일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잡는 것이 궁극의 목표가 돼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한인회는 정치판이 아니라 친목단체라는 본연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언제부터였던가. 그들이 있기 전, 애초 한인사회에는 집토끼와 산토끼의 구분이 없었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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