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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꼴찌의 미학

hherald 2012.12.03 20:37 조회 수 : 6228




주로 사회인 선수로 구성된 국제 야구대회인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가 어제 끝났다. 2년에 한 번 정도로 열리는데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등이 강팀이고 이들 국가가 우승을 나눠 가진다. 이번 26회 대회는 대만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서 특이한 점은 승패를 떠나 가장 행복한 팀은 파키스탄 선수단이었다고 한다. 5경기에서 1점도 내지 못하고 5전 전패. 꼴찌였다. 필리핀을 1승 상대로 지목하고 누가 꼴찌가 되느냐를 놓고 맞붙는 혈전이었던 마지막 경기에서 온 힘을 쏟았지만 결국 졌다. 경기가 끝나고도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은 파키스탄 선수단은 승패와는 상관없이 선수들이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웃을 수 있다고 했다.

파키스탄 팀은 한국과의 경기에서도 물론 졌다. 이때 지고도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5-0, 5회 말 강우 콜드게임으로 졌는데 비를 맞으며 경기를 하는 것을 오히려 즐겼고 강팀을 맞아 작은 점수 차로 져서 행복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그 행복이 이해가 되는지.

꼴찌의 행복.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스포츠에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철저히 승자만을 기억한다. 축구에서 세계 랭킹 1위 국가가 스페인이라는 것을 웬만한 스포츠팬은 안다. 그러나 세계 랭킹 꼴찌를 우린 모른다.

2012년 현재 FIFA랭킹 최하위는 공동 207위에 올라 있는 아시아국가 부탄, 유럽의 산마리노, 서인도제도에 있는 북중미지역에 있는 영국령 턱스엔드케이코스제도다. 이 중에 산마리노의 경우를 보면 국제대회성적이 110전 1승 2무 107패로 참담하다. 국제경기에 처음 출전한 1990년 11월 이후 A매치에서 총 472골을 내주고 17골을 넣었다. 1년에 평균 한 골도 못 넣었는데 2008년 이후로는 아예 A매치에서 골 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국가대표팀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며 전 국민 3만 명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라가 작아 워낙 존재감이 없는데 축구 대표팀이 국제무대에 산마리노라는 나라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한다. 지면 죽을 것처럼 비통해하는 축구 강국이 생각하는 행복과 척도가 다르다.

비슷한 경우가 2002년에도 있었다. 한.일 월드컵 브라질과 독일의 결승전이 벌어지기 직전, 히말라야에서 세계 축구 꼴찌 결승전이 열렸다. 당시 FIFA 랭킹 202위 부탄과 203위 최하위 몬세라토가 A매치 경기를 가졌다. 네덜란드의 광고회사가 주선한 이 경기 결과는 부탄의 4-0 승.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벌이다 보니 몬세라트 선수들은 고산병 등의 이유로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 결과를 떠나 두 나라는 축구를 통해 우정을 쌓고 자신감을 가졌다는 큰 선물을 안고 아름다운 '꼴찌' 결승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몬세라토는 인구 8천 명의 나라. 몬세라토의 존 오스본 총리는 "승패를 떠나 우리 국가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맞다. 스포츠를 통한 인류 평화의 구현은 등수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지금은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의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생각난다. 마라톤 경기에서 선두주자는 이미 오래전에 결승점에 들어갔는데 구경꾼들도 돌아갈 무렵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는 푸른색 유니폼의 마라토너. 작가는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 오를 정도로 열열하게 박수 갈채를 보낸다.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꼴찌를 한 파키스탄 선수단의 감독은 한국인이다. 비를 맞으며 하는 경기를 오히려 즐기고 대패를 하고도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고 미소를 띠며 삼삼오오 사진을 찍었다는 그들. 스포츠를 스포츠로 즐기는 순간, 그런 꼴찌가 오히려 더 아름답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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