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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부모와 자녀가 연속해서 한 교회에서 담임자가 될 수 없다는 교회 세습 방지법이 감리교단에서 만들어진다. 교회를 세습할 수 없는 대상은 장인, 장모, 사위, 며느리까지 확대된다. 진짜 놀랄만한 획기적인 시도다. 그러나 개신교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올 이 획기적인 시도가 과연 시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감리교 내부의 반발부터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더 의문이다.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신학적, 성경적으로도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어느 은퇴한 목사는 "세습은 자식에게 저주"라는 말까지 했지만, 아버지의 후광으로 별다른 노력 없이 대형교회의 목사가 되는 세습의 무임승차는 계속됐다. 세습은 정작 손댈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아니, 세습이란 말 자체가 터부시 됐다. '세습'을 '청빙'으로 포장한 사례가 무수히 많았고, 교회 세습과 관련된 유력 목사들은 아들이 아버지에 이어 담임목사를 맡는다 해도 이는 세습이 아닌, 절대적인 하나님의 부르심과 본인의 소명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교인을 회유하고 합법적 절차의 모양새를 갖춰 당위성을 갖추려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는 세습을 했다. 한국교회에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아들, 손자의 3대 세습 교회까지 나왔다.

한국교회 세습의 역사를 보면 '대형 교회 세습 1호'로 기록된 1997년 충현교회의 세습이 그 뒤 줄줄이 이어진 대형교회 세습의 신호탄이었다. 자산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충현교회는 1953년 교회를 개척한 김창인 목사가 원로목사로 물러나면서 미국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던 아들을 뒤늦게 신학교에 보내 목사 안수를 받게 한 뒤 1997년 4대 담임목사에 앉히면서 세습을 했다. 당시 아들 김성관 목사의 나이는 55세였다. 하지만 부자간 갈등이 계속됐다. 2012년 96세의 원로목사는 아들 목사를 향해 "교회에서 물러나라"고 호통쳤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인 앞에 세습을 회개한다"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자질이 없는 아들을 목회자로 세우는 무리수를 둬 하나님과 교인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고백은 개신교계 전체에 교회세습 비판 여론을 끓게 했다.

감리교의 교회 세습 방지법은 과연 감리교단의 막강한 '슈퍼파워' 김 씨 3형제 목사의 비토를 뚫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큰 형 김선도 목사가 아들에게 광림교회를, 둘째 김홍도 목사가 아들에게 금란교회를, 셋째 김국도 목사가 아들에게 임마누엘교회를 나란히 세습했다. 특히 감리교단은 국내 3대 교단 중 하나지만 교단의 수장을 뽑는 감독회장 선거도 제대로 못해 법원으로부터 재선거를 명령받아 자정능력이 없는 교단의 오명을 쓴 기억이 있다. 김 씨 3형제 목사가 십계명을 위반한 것은 부지기수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것도 있지만 감리교단은 지금까지 이들에게 너무도 관대했다.

물론 세습이 모두 나쁘다고 단정해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시골 오지 교회를 평생 섬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이 섬긴다면 이는 감동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아들만한 목회자가 없다는 세뇌식 설교, 아들이 새교회를 만들어 아버지교회와 합치는 편법, 아들이 없으니 사위에게라도 물려주자는 이기. 교회 세습은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신뢰를 잃은 핵심 원인이 됐다. 그래서 교회 세습 방지법은 '지금 뭔가를 해야 한다'는 교회의 긍정적인 추진력이 될 수가 있고, 세습을 계획하는 교회에게는 '지금 뭔가를 해야 한다'는 자성의 울림이 될 수도 있다. 

교회 세습 방지법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진통이 예상된다. 그렇지만 어느 목사의 글처럼 <교회세습의 밑바탕에는 교회를 하나님의 은혜 및 수많은 신자의 헌신과 봉사로 이룩한 게 아니라 목사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일궜기에 '내 것'이라는 이기적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은 세습을 포장할 수 없다는 금언으로 들린다.

교회란 '믿는 이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이건 세습할 수 없는 무형의 보물이다. 믿는 이들은 다 알겠지만 주인이 따로 있는 보물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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