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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지난 시즌 박지성과 윤석영이 뛰었던 프리미어리그의 퀸즈팍레인저스(QPR) 해리 레드냅 감독은 팀의 부진과 불운이 계속되고 강등 위기에 놓이자 어느 날 구단 슈트와 넥타이를 버렸다. 기적을 바라는 심정으로 양복을 내다 버리면서 불운, 부진까지 통째로 내다 버렸다는 뜻이었다. 레드냅 감독은 징크스나 미신에 약했다고 할까. 토트넘 감독으로 있을  때 팀이 상승세를 타면 옷을 갈아입지 않고 경기때 똑같은 양복과 넥타이를 하고, 차도 똑같은 자리에만 주차했다. 부인이 왔을 때 패하자, 경기장을 찾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토록 징크스에 매달린 그는 QPR이 강등 위기에 놓이자 아내만 빼고 다른 모든 것을 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불운의 양복까지 버린 레드냅의 절박함은 통하지 않았다. QPR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됐다.

징크스에 집착하는 것을 비난하려는 뜻이 아니다. 스포츠에서 이기기 위한 준비 단계로 마련하는 징크스는 어쩌면 심리적 안정을 주고 징크스의 일종인 루틴(선수마다 가진 습관적이고 규칙적인 절차와 동작)은 실제 그 효과가 입증돼 기량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타이거 우즈도 "내가 좋은 샷을 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언제나 같은 루틴을 따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해야 평정심이 유지된다고 했다. 물론 너무 의지하다 보면 심신이 위축되고 그에 갇혀 되레 움츠러들 수 있다. 행운의 부적을 두고 왔다거나, 같은 색의 속옷을 입어야 한다거나, 면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갇혀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필요한 마당에 불안한 정신상태로 승부에 임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어느 운동선수도 행운의 부적이나, 특정 색깔의 속옷이나, 면도를 하지 않은 사실이 승리를 가져왔다고 믿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는 사람의 일. 적어도 운 때문에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이런 스포츠의 미신, 징크스에 기대는 것이 아닐까. (영국인의 런던올림픽 징크스 일화 팁. 런던올림픽 초반 캐머런 영국 총리가 관람하는 경기마다 영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서 '차라리 올림픽을 보지 말라'라는 핀잔까지 들은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행운을 안겨다 줄 독특한 미신에 집착하는 선수들이 소개되는 것도 일반인 입장에서는 그냥 재미로 볼일이다. 실수로 자신의 브래지어 속에 차를 우려내는 티백을 넣어둔 상태로 경기했다가 신기술에 성공하자 그 티백에서 '행운의 찻잎' 하나를 꺼내 몸에 지닌 채 경기를 치르는 선수, 경기할 때마다 꼭 붉은색의 립스틱을 발라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선수, 경기를 치를 때 꼭 콧수염을 그려 넣어야 하는 체코의 여자 스노보드 선수, 경기 전에 꼭 라면을 먹어야 하는 일본의 스키점프 선수, 최고를 뜻하는 숫자 1이 겹친 11을 좋아해서 경기하는 날 반드시 11시 11분에 시계를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한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등등...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음을 안정시키고 신체의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는 설명과 함께 소개한다. 

특히 재미있는 징크스 소개가 있다. 동계 올림픽 여자 피겨에는 두 가지 속설이 있다고 한다. 첫째, 1984년 카타리나 비트부터 2010년 김연아까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름의 마지막 알파벳은 ‘A'로 끝난다는 것. 둘째, 프리프로그램에서 일명 올림픽 블루라고 하는 푸른색 계열의 드레스를 입어야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속설이다. 1998년 타라 리핀스키부터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까지 금메달리스트는 모두 프리스케이팅에서 푸른색 의상을 입었다.

징크스는 깨지기 위해 있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소치에서 김연아는 탱고의 강렬함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 드레스를 택했다. 강한 자신감은 막연한 징크스를 앞서는가 보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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