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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문정왕후의 어보(御寶)

hherald 2013.09.23 18:48 조회 수 : 2431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기념품 수집용으로 훔쳐갔다가 미국 박물관에 소장된 문정왕후 어보가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문정왕후 어보를 소장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카운티박물관은 어보가 종묘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된 사실이 분명하므로 한국에 반환하겠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박물관도 이 어보를 경매 시장에서 샀는데 무조건 반환한다니 고맙고 반가운 소식이다.

어보(御寶)는 국가와 왕권을 상징하는 예물로 일반적으로 왕·왕비·왕세자 등 왕실의 의례용 도장을 말한다. 임금의 도장은 보통 국새라고 하는데 국새는 실무용, 어보는 의례용이라 할 수 있다. 손잡이에 용이나 거북이 있는데 문정왕후 어보는 거북이다. 조선 시대 어보는 기록상으로 366과가 제작됐는데 한국에는 322과가 있다. 2011년 6월에 성종의 비 공혜왕후의 어보가 고미술품 경매에 나와 민간단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에 낙찰됐는데 당시 낙찰가가 4억 6천만 원이었다. 공혜왕후의 어보를 경매에 내놓은 이는 198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해 소장해왔다. 이 어보도 한국전쟁 때 미군이 불법 반출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에 문정왕후 어보가 돌아오게 됐지만 43과의 어보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국보급 도장인 어보가 돌아온다면서 500년 전의 인물인 문정왕후도 다시 관심사가 됐다. 조선 역사에 어린 왕을 두고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두 명의 왕후가 있었는데 명종의 섭정을 했던 문정왕후와 순조의 섭정을 했던 정순왕후다. 그런데 이 둘의 비교에도 무리가 있는 것이 정순왕후는 4년이지만 문정왕후는 조선의 측전무후답게 20년간 수렴청정을 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발휘한 여성 독재자는 문정왕후다. 잘 알다시피 중종의 제2 계비로 장경왕후가 죽은 후 젊은 나이로 왕비가 돼 명종을 낳는다. 중종의 장남 인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지만 아들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철저히 마마보이로 만들고 자기 하고 싶은 데로 국사를 재단했다.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자신의 피붙이 윤원형과 장옥정을 꼭꼭 끼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문정왕후가 어린 시절 매우 총명하고 검소하여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예의범절을 잘 지켰다고 썼다. 승자의 기록인지 어린 시절은 정말 그랬는지 잘 알 수 없지만 후에 그는 검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딸이 넷인데 공주들의 사치가 대단했고, 절을 짓거나 제사를 지낼 때도 백성의 궁핍과 상관없이 어마어마하게 호사했다고 한다. 물론 사후에는 나라를 말아먹은 여성 독재자로 자주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도 조선의 성리학을 배척하고 불교를 중흥해 사대부들에게 원한을 사서 부풀려진 기록일 수도 있다. 문정왕후의 정치 개입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대부들이 탐욕스런 문정왕후가 능력도 없고 자격도 안 되는데 국사를 농단해 정사를 그르쳤다고 강조해서 후대에 내명부의 정치 간섭을 배제하는 명분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1547년 명종이 경복궁 근정전에 나가 문정왕후의 존호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보도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보면 466년의 세월이 깃든 어보가 도난 당한지 60년 만에 돌아온다. 문정왕후도, 그의 어보도 우리 역사의 편린이다. 우리 역사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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