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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요즘 일부 동포 신문을 보면 어려운 영어 공부를 하는듯하다. Chancery Division, Charity Commission, Indemnity claim 등 일반인에게는 아주 생소한 단어가 일부 동포신문에 하도 자주 등장해 그 신문에서는 아예 일상적인 통용어처럼 사용된다. 그리고 그 유명한 <Acting on behalf of ...>는 최다 사용어이며 유행어가 됐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이런 단어가 이토록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 직업군이 이런 쪽이 아니라면 이런 말 모르고 살아야 정상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자주 사용되는 사회는 소송으로 시끄러운 사회요, 소송이 잦은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없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이렇게 소송을 많이 하는 사회를 정상적으로 보지 않는다. 영국의 한인사회가 소송으로 몸살을 앓는다면 영국인의 눈에 한인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한인사회는 소송과 관련된 단어에 휘둘려 건강하지 못하다. 물론 건강하지 않은 이는 0.1%도 되지 않지만 그 0.1%가 99.9%의 목소리까지 대신 내고 있으니 전반적으로 앓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몇 명만 없으면 이 사회가 편안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모두 빈말은 아니다. 

앞서 말한 저런 용어를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정상적인 99.9%는 이런 단어와 관계없이 살고 있다. 내용도 모른다. 그런데 비극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소송이 있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는 주장을 지겹도록 펼치는 이들이 있어 문제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데 슬프게도 보이는 곳에 있어 계속 보이니까 그게 문제다. 지난 몇 년간 지칠 줄 모르게 자신들의 이익에 관련된 문제로 싸운 사실을 일반 한인이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런데 관심이 없어 모르는 이에게는 모르는 것이 마치 일반적인 상식선을 모르는 것인양 호통치며 공부 좀 하라고 적반하장,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가지면 진실을 왜곡한다고 호통치며 빠지라고 윽박지르는 안하무인, 결국 동조하지 않으려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만 있으라고 여러 사람의 재갈을 물린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어느 판사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는 관심 없다. 손을 들어주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관심 없다.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잊었다. 누가 몇 차례 말을 바꾸고 약속을 저버렸지도 상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소송에 쌓인 한인사회를 제대로 봐줄 현지인이 없고 소송에 푹빠진 한인회를 봉사단체인 차리티로 봐줄 영국의 기관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인회라는 단체를 영국 현지사회에서 더 이상 차리티라는 봉사단체로 봐주지 않는다면 소송 당사자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는 소송이 만든 최대의 병폐가 될 것이다. 어느 네티즌이 쓴 글을 보고 느낀 건데 이 점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소송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결론이 나든 그건 개인적인 문제다. 그런데 그런 개인적인 문제로 시작된 소송으로  정작 한인회라는 곳이 해 온 일련의 활동을 추적해보니 봉사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에 매여 돌아다녔다고 판단돼 <한인회는 차리티가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나오면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네티즌과 동포신문이 지적하듯이 차리티가 아니라면 50년 역사의 한인회는 극단적으로 지난 50년간 세금을 횡령한 단체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개인적인 이유로 일으킨 소송이 한인사회에 이런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 가장 떳떳한 이가 소송의 당사자와 그 주변인들이다. 한인사회의 아이러니다. 

한인회가 차리티가 아니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도대체 소송은 한인사회를 어디까지 만신창이로 만들 건지 아찔하다. 한인회 논란에서 진짜 중요한 건 이점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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