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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소송 중독

hherald 2013.06.21 17:53 조회 수 : 2892



몇 년 전 미국한인사회에서 있었던 "바지 소송 판사'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한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바지 하나를 맡긴 판사가 세탁소에서 바지를 분실했다고 세탁소 주인인 한국인을 상대로 6500만 달러의 천문학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이 소송은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원고였던 피어슨 판사는 손해배상 금액을 5400만 달러로 낮춰 계속 소송을 했다.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그는 법정에서 <6500만 달러·5400만 달러라는 손해배상 금액이 소비자(reasonable consumer)가 판단했을 때 잃어버린 바지를 대체할만한 합리적인 가치(reasonable value replaceable for lost pants)인가” 라는 판사의 질문에 대해 과거 판례를 내세우며 무조건적·무제한적 보증에 대한 주장을 일관해 재판에서도 지고 방청객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 어처구니 없는 소송은 당사자의 파멸을 이끌었다. 그는 행정법원 판사 재임용에 탈락했다. 행정법원은 피어슨 판사가 법률적 판단력과 상식을 결여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시켰고 그는 워싱턴 시 정부에 해임 판결 무효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는 곧 기각됐다. 그러자 그는 워싱턴 DC 시 정부를 상대로 또 소송을 했다. 사람들은 그를 '바지 판사'에서 '소송 중독 판사'로 바꾸어 불렀다. 

소송 중독. 참,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법정에서 나온 판결 중에 <소송 중독자는 소송으로 타인에게 정신적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표현이 명예훼손이 아니라 오히려 공익성이 있다>라고 판단한 것을 봤다. 소송 중독자는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라는 판결이다. 의학 전문가는 소송 중독증이 마약과 같다고 했다.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기 어렵고, 결국 소송으로 인해 삶이 점점 파멸되어 간다고 했다. 이 중독 상태에서 우울과 불안한 장애를 겪으며 끊임없이 소송에 소송을 이어가다가 남에 대해서만 정신적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정신적 살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소송 중독이 됐고 왜 그런 고질병이 대물림 될까. 물론 대물림 되는 것은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이어서라고 답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처음 소송 중독자는 사회의 자정능력을 믿지 못하는 오만과 이기에서 생겼을 것이다. 어느 사회나 자정 능력이 있다. 그 사회가 흔들리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의지로 사회를 고치려고 한다. 대수술을 해서 하루아침에 고치든 점진적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고쳐 나가든 나름대로 고치고 해결해나가는 방법이 있다. 그 사회의 구성원이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만들어 나가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역사와 문화, 언어와 생활 등 공유하는 그 모든 것에 뿌리를 두고 흐르며 필요할 떼 그 힘을 발한다.

그런데 어떤 사회에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자기 이기를 정의로 포장해 나서서 문제점을 더 키우는 독선이 있다. 그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남에게 해결해달라고 하는 낯뜨거움을 모른다. 소송을 전가의 보도로 아는 오랑캐식 해결법. 자정 능력을 빼앗긴 그 사회는 후퇴하고 소송 중독자를 따라 모두가 지쳐간다. 

어떻게 해결할까.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고 했다. 사례에서 보듯이 소송이라는 오랑캐식의 해결밖에 모르는 소송 중독은 결국 소송으로 물리쳐야 한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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