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앞 교문에 놓인 빵과 우유. 내 평생 빵과 우유를 보고 울기는 처음이다. 흰 꽃다발과 함께 놓인 식권. 식권을 보고 울기도 처음이다. 조화에 달린 리본에는 <사랑하는 아들 딸 미안해>. 어른이 된 이 나이가 오히려 미안했다. 고등학생이 학교 문에 맨 노란 리본에 적힌 분노, <대한민국 미워요>. 가슴이 아린다.
당사자가 아닌 이에게도 감정은 허락된다. 그래서 추모 글을 보는 것이 더 힘든 일이 되었다. 옮겨 본다. <가족분들이 아닌 저희 국민들에게도 감정이 허락된다면 그 허락된 감정마저도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생존자는 죄책감 가지지 마요…돌아와 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어느 초등학생은 <먼저 가신 형 누나들 어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너무나 죄송해요. 배 안에 있을 형 누나 제발 빨리 돌아오세요 제발 꼭~이요>. 교사는 <사랑하는 동생, 제자들아 형으로서 선생으로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어느 아저씨는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게 되고 살게 해서, 하늘나라에서 부디 이 어른들 용서해다오. 청주에서 올라온 아저씨>라고 썼다.
슬픔은 국경을 초월했다. 중국 네티즌은 <보고 울고 말았다>, <생명에는 국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일본에서는 <같은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제 마음도 한국 엄마와 같아요>.
그런데 이처럼 슬픔을 보듬는 위로와 달리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망언들. 조지 클렘비스는 인류 역사에서 총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말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망언에 맞아 죽는 유족의 심정을 짐작이나 하는지...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 아들은 유족의 분노를 <국민이 미개>하다고 했다. 그는 미개한 국민의 표를 어떻게 얻을지 고민 중이다.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실종자 가족을 선동꾼으로 몰았다. 그가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는 선동꾼>으로 몬 사람은 실제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었다.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사고가 큰 불행이지만 <국민의식부터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꼭 불행인 것만은 아니다.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백 명을 수장시키며 기회를 얻어야 하는 공부가 과연 어떤 공부인가.
<먼저 도망친 선원들이야말로 전형적인 한국인 체질 아니냐>는 일본 극우 네티즌,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란리본 캠페인'을 매도하는 <노란 리본은 사실 나비다. 무속에서 노란 나비는 저승으로 가는 영혼을 뜻한다. 노란 리본은 귀신을 부른 것이므로 잘못된 행위다.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유언비어, 노란 리본의 문양을 'ㅇㅂ'로 교묘하게 변형시킨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의 가짜 '노란 리본'. 정말 이러고 싶을까.
같은 시대를 산다는 것이 불행처럼 느껴지는 철저한 망언도 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정몽준 아들 페이스북 글과 관련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건 비극>이라 했고 손석희 앵커와 정관용 시사평론가가 방송 도중 울컥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것을 비난하며 <표절석희(손석희), 표절관용(정관용)같이 나잇살 먹은 사람이 눈물감성을 선동하는 건 파렴치한 작태>라고 했다. 보수논객 지만원은 <시체장사 한두 번 당해보느냐>, <세월호 침몰은 국가전복을 위한 남한 빨갱이들의 음모>, <세월호 참사는 도박으로 살길 뚫는 김정일 토정비결의 신호탄>, <제2의 5·18 폭동이 일어난다는 확신이 드니 대통령은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무능한 어른이라서, 미개한 국민이라서 그랬던가. 무능한 국가도 모자라 생각 없는 망언까지 보태 슬픔이 더했던 안타까운 시간이 계속 흘렀다. 조지 클렘비스의 말을 한 번 더 옮긴다. 인류 역사에서 총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말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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