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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파시스트'라고 불리기 싫으면...

hherald 2014.04.14 19:49 조회 수 : 844

 



정치인이 파시스트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펄쩍 뛸 일이다. 이미지에 굉장한 타격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프랑스 법원은 극우정당 대표를 파시스트라고 불러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즉,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를 파시스트라고 불러도 된다는 것이다. 마린 르펜은 <나를 파시스트라고 해서 모욕을 당했다>고 했는데 법원은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주제를 논할 때 사용된다면 파시스트라는 말에 모욕적인 의미가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마린 르펜은 파시스트라고 불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참 곤욕스런 일이다. 그녀는 국민전선에서 극우정당의 이미지를 없애고자 국민전선을 극우라고 표현하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혀 왔는데 자신은 오히려 극우의 극치 파시스트로 공공연히 불리게 됐다.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은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식의 전통적 가치 복원, 이슬람을 유독 배척하는 외국인 이민 제한, 사형제 부활 등을 정당강령으로 1972년 만들어졌다. 당시 당수는 장마리 르펜으로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자크 시라크와 2차 결선 투표에 진출한 바 있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었다. 장마리 르펜은 홀로코스트 부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2011년 딸 마린 르펜이 새 당수가 되었다. 딸은 극우정당의 과격한 이미지를 쇄신하고 차별화된 전략으로 맞섰다. 우파의 강경한 입장을 고집하면서도 부드럽고 친근한 말투로 유권자에게 접근해 이번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극우정당의 과격한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그녀의 노력에 파시스트의 칭호가 붙으니 당연히 <파시스트는 정치적인 맥락에서도 명백히 모욕적인 단어다>라고 발끈하며 항소하겠다고 했다. 

파시즘 하면 무솔리니가 떠오르는데 정확히 그는 후기 파시즘의 주도자다. 보통 파시즘은 후기 파시즘을 뜻한다. 파시스트들의 특징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교묘히 이용,  대중적 애국심을 고취해 독재를 합리화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신체가 우월하고, 군인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성우월주의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들은 인간이 평등하지 않다고 본다. 엘리트에 의한 정치, 일당독재로 한평생 인간생활의 전국면을 통제한다. 파시즘은 약육강식의 논리다. 여기에 인종주의가 포함되면 나치즘이 된다. 국민전선의 1대 당수 장마리 르펜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딸은 그런 아버지의 과격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친유대인 정책을 폈다. 그런데 노력이 허무하게도 극우정당은 역시 극우정당이라는 딱지를 못 떼고 그녀는 파시스트로 불리게 됐다.

파시스트당의 로고에는 도끼 하나에 도낏자루 수십 개가 다발로 묶여있다. 이러한 다발을 파시스(묶음)라고 하는데 도끼자루 다발은 원래 로마황제의 행차 때 열 두명의 덩치 큰 장정이 어깨에 메고 황제를 따라다니는데 절대권력을 상징한다. 도끼날은 황제의 권력을, 묶여있는 도낏자루는 중앙의 황제에게 복종하는 지방권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파시스트는 민주주의와 완전히 반대된다. 민주주의(democracy)는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de) 있는 지방민이 서울로 몰려와서(mo) 국가를 통치하는(cracy) 것이다. 중앙의 도끼날에 지방이 묶여서 도낏자루 역할이나 하는 파시즘과 정확히 반대다. 그러니 파시스트라는 말이 싫을 수밖에.

그런데 파시스트의 호칭이 싫든 좋든 유럽 파시스트들은 지금 약진하고 있다. 파시즘은 논리가 배제되고 감성이 우선하는 포퓰리즘이다. 파시즘은 인종, 지역, 민족의 우월심리가 심하게 작용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파시즘은 자유의 반대 개념이다. 

마린 르펜이든 누구든 파시스트라고 불리기 싫으면 파시즘의 사고와 행동을 하지 않는 길뿐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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