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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사랑' 갖고 갈팡질팡하는 국립국어원

hherald 2014.04.07 18:49 조회 수 : 1087

 

국립국어원이 '사랑' 갖고 갈팡질팡한다고 비난을 받는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국립국어원의 사전에서는 너무 잘도 바뀐다는 비아냥과 이번에 다시 바뀐 사랑의 뜻이 성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한국어와 한글을 연구하고 이에 관련된 정책을 개발하는 곳이다. 국어 순화, 외래어 표기법 운용, 전문 용어 표준화, 국어 사용 실태 조사, 각종 자료집 및 간행물 발간 등의 사업을 진행하며 대한민국 표준어의 기준이 되는 <표준국어대사전>을 편찬한다. 

문제가 된 것은 국립국어원의 '사랑'에 대한 낱말 풀이다. 처음 <사랑 =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였다. 그런데 2012년 앰네스티 대학생 네트워크의 대학생 5명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사랑, 연애, 애정, 연인, 애인의 뜻풀이 변경을 제안했다.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가 성 소수자 차별을 만든다"는 신문고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립국어원은 사랑과 관련된 5개 단어의 뜻풀이를 바꿨다. <사랑 =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에서 이성 간의 사랑을 뜻하는 대신, <사랑 =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됐다. 이런 식으로 <연애 =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 대신에, <연애 = 연인 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으로 바뀌었다. 즉, 사랑, 연애 등의 행위주체가 남녀 또는 이성으로만 규정되었던 것이 성 중립적 표현인 '두 사람'으로 변경된 것이다.

그러자 한국교회연합, 한국교회언론회 등 기독교 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애매한 표현으로 바꾸어 동성 간에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는 '동성애'를 염두에 두고 바꾼 것이라 지적하며 <만약 이렇듯 의도적인 언어의 풀이를 내버려둔다면 부모와 자녀, 형제나 자매 사이에도 연애할 수도 있고, 연인관계도 될 수 있으며, 애인도 될 수 있다는 뜻이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타락한 서구사회처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에,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근친상간도 합법화가 된다>고 까지 해석했다. 특히 이들 단체는 국립국어원이 '결혼'이란 말도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에서 '남녀'라는 말을 빼려고 한다고 예측하며 국립국어원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작성하거나 전화, 우편, 팩스로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는 운동을 벌여 국립국어원을 압박했다.

올해 1월, 국립국어원은 결국 사랑의 뜻을 또 바꿨다. 사랑의 정의는 다시 '남녀'로 한정됐다. '연애'나 '애정' 등도 행위주체가 '사람'에서 '남녀'로 되돌아갔다. 국립국어원 측은 2012년 개정된 정의가 사랑의 '전형성'을 드러내지 못해 재개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기독교계의 항의로 바뀐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었지만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항의 캠페인이 지난 한 해 벌어진 것은 누구나 다 아는 터라 일부 누리꾼은 "이러다 성경이 국어사전이 되는 게 아니냐"고 개탄하고 "단체의 사상을 반영할 게 아니라 사상을 반영할 언어를 규정하는 게 국립국어원의 할 일"이라는 매서운 지적도 나온다.

사랑의 옛말은 '다솜'이라고 한다. 그래서 '닷오다'가 지금의 '사랑하다'의 뜻을 가진 말이었고, '사랑하다'는 원래 '생각하다'의 뜻을 지닌 말이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은 사랑 갖고 좀 더 생각했어야 했다. 사랑이란 이성애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규정한 국립국어원에 동성 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묻는 성 소수자들의 안타까운 목소리도 좀 생각했어야 했다. 동성애자는 사랑이란 단어를 쓸 수 없는가? 모두가 평등하게 사랑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좀 생각했어야 했다.

蛇足 : 옥스포드 대사전에 사랑(love)의 뜻을 찾아보니 대상이 딱히 이성이 아니라 누군가(for someone)로 나와 있었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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