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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안네의 일기>의 또 다른 박해

hherald 2014.03.17 21:16 조회 수 : 1209




일본 도쿄의 도서관 곳곳에서 <안네의 일기>와 홀로코스트 관련 서적을 누군가 고의로 훼손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지난해 2월부터 무려 일 년 넘게 수백 권의 책장을 손으로 찢거나 칼로 잘랐다. 국제 유대인 인권보호기구는 "편견과 증오를 가진 사람들이 안네의 용기와 희망, 사랑이 넘치는 역사적 기록을 훼손하려 한다"고 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서는 일본의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안네의 일기>는 워낙 유명해서 여기서 그 내용을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전쟁의 참혹함과 나치 치하 유대인들의 어려움과 함께 그 시절 소녀의 풋풋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이 일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대인, 장애인, 집시, 공산주의자, 여호와의 증인, 프리메이슨 등 나치의 맘에 들지 않는 부류를 절멸시키려던 나치의 광분의 학살을 엿보게 하는 말 그대로 '산 교과서' 격이다. 한편으로 저항·일기 문학이면서 완역판이 나오면서 하나의 여성 문학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누구에게 읽힐 목적으로 쓰인 글이 아니라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담은 일기이기 때문에 안네의 글에 담긴 당시 사회의 모습은 그 어떤 글보다도 생생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훼손하는 사건이 이어지자 일본 극우세력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훼손된 책이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박해의 기록인지라 일본의 침략사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극우세력이 저질렀을 것이라고 거의 단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일본의 혐한단체를 중심으로 극우세력은 한국인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우익단체 사이트에서는 일본 폄하에 혈안이 된 한국인이 우익단체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일부러 저지른 것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일본의 어느 혐한단체는 한국인과 유대인이 공모해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고 했다. 일본 인기 웹사이트 '2chan' 게시판에는 전 세계 유대인을 한일 과거사 논쟁에 끌어들이려고 한국인들이 안네의 일기 등을 고의로 훼손했다는 글이 올랐고, 극우 정치단체 '유신정당 새 바람'의 전 부대표 세토 히로유키는 "범인이 아마도 유대인을 동지로 삼고자 하는 한국인일 것이다. 유대인과 한국인이 함께 이런 각본을 쓰고 지금 같이 연기까지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극우단체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일본 극우단체의 눈에는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서 안네 관련 자료를 일본 전역의 도서관에 기부하겠다는 것이 달갑지 않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독일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당시 안네 프랑크와 가족이 살았던 집에 세워진 박물관인데 현재 한국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홀로코스트와 연계해 알리는 작업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훼손한 인물은 전혀 엉뚱한 이였다. 불안정한 언동을 보인다는 그는 "책이 대필작임을 알리기 위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안네의 일기를 안네 프랑크가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썼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일기 대필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필적 감정 등을 통해 안네가 쓴 것이라고 확인됐다. 참으로 근거 없는 사실을 맹신해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박해받던 안네 프랑크, 그녀의 일기가 받는 또 다른 박해가 씁쓸하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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