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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호랑이를 위한 변명?

hherald 2013.12.09 19:38 조회 수 : 1920



서울대공원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의식을 잃은 사육사가 끝내 숨졌다. 숨진 사육사는 사육 중인 수컷 시베리아 호랑이(이름이 ‘로스토프’라고 한다)에게 먹이를 주던 도중 목과 척추를 물려 의식을 잃고 병원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며 사투를 했지만 15일 만에 끝내 숨졌다. 사육사가 숨지기 전부터 이번 사고를 두고 갖가지 의문과 서울대공원의 미숙한 안전조치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이제 사육사는 숨지고 그를 죽인 호랑이는 남았다. 앞으로 이 일은 어떻게 마무리되며 재발을 방지할 어떤 봉합이 있을까. 

이 사고는 <날 만한 사고가 나고야 말았다>는 비난을 받는 요인들이 있다. 사육사를 죽인 호랑이는 사고 당시 호랑이 우리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라 좁은 여우 우리에 있었다. 사육사는 2인 1조로 움직이는 것이 원칙인데 당시 혼자서 먹이를 줬다. 죽은 사육사는 20년 넘게 곤충 전문가로 일했는데 갑자기 맹수를 다루도록 했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사후약방문으로 줄줄이 이어진다. 당연히 고인과 유족에게는 애도를.

그럼 이제 사육사를 죽인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는 어떻게 될까. 사고 당시 맹수의 운명은 인명을 위협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사육사를 공격한 뒤 다른 사람에게도 덤비는 행동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총을 맞았을 것이다. 2011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선물한 로스토프는 사고 당시 경찰과 소방대가 출동하자 스스로 우리 안으로 들어가 사살되지 않았다. 비교되는 것이 이 사고가 있기 며칠 전 제주도의 동물원에서는 반달곰이 사육사를 공격해 숨지게 했는데 제압이 어렵고 위험해 경찰이 현장에서 사살했다. 또 다른 사례로 영국에서 A3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황소를 경찰이 사살했다는 뉴스가 지난주에 있었다. 맹수가 아닌 황소라도 고속도로에 나타나 사람에게 위험하니까 죽인 것이다.

동물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있어 흔히 비싼 몸값의 동물은 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는데(중국의 보물로 불리는 판다는 관람객을 물어도 처벌 안 받고, 농가에 나타난 멧돼지는 산으로 도망가는데도 사살하는 것처럼) 그렇지는 않다. 로스토프가 그날 다른 사람도 공격했다면 푸틴 할아버지가 있었더라도 경찰이 당장 사살했을 것이다. 순순히 우리로 들어간 호랑이에게 총을 쏠 필요는 없다. 사람을 공격한 경험이 있는 맹수가 더 위험해진다고 단정할 수 없고 계속 우리 안에서 살 로스토프가 또 다른 위험을 만든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래도 처벌을 해야 한다면 안락사? 이런 사례가 외국에서 간혹 있었지만 이는 통제하기 어려울 때 얘기다. 그럼 굶기는 벌? 호랑이가 굶는 동안 반성을 할까? 그렇다고 일을 열심히 시킬 건가? 온종일 관람객을 맞으라는 일? 사람을 숨지게 한 호랑이를 관람용으로 본다는 것도 불편하지 않을까? 

영국에서 14세 여자아이가 4마리의 개에게 물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람을 해친 개의 주인은 최대 2년 징역형이 고작이었는데 이 사건 이후 영국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개 주인에게 종신형까지 처벌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육사를 죽인 시베리아 호랑이의 죄는 누구에게 물을까. 주인의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누굴까. 재발 방지를 위한 봉합은 이런 책임을 먼저 묻고 한 땀 한 땀 단단히 꿰매야 한다. 

어느것도 사육사를 위한 애도나 호랑이를 위한 변명이 되기에는 늦은 감이 있지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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