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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에 대한 설명 중 맞는 것을 고르는 문제다. <유럽연합이 북미자유무역협정국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부분이 문제가 된 문제. 

학생들이 배운 세계지리 교과서 2종과 EBS 교재에는 EU의 총생산액이 NAFTA보다 크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2009년 통계를 기준으로 했다. 실제 2012년 세계은행 통계에는 EU의 국내총생산은 16조 6335억 달러로 NAFTA의 18조 6841억 달러보다 적다. 교과서와 현실의 차이. 따라서 이 문제는 정답이 없는 문제로 모두가 정답으로 해야 한다. 세계지리 8번 문항의 배점은 3점. 단 1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수능에서 배점 3점인 문항을 모든 응시생이 맞았다고 채점하면? 평가원은 그 뒷감당이 깜깜하다고 판단해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교과서와 EBS 교재를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교과서를 충실히 공부한 학생이면 모두 정답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 평가원의 거듭된 답변이었다. 교과서와 EBS로 공부한 아이들이 손해를 보면 정부 입시 정책의 근간이 비판을 받을까 봐 당시 오류 인정을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교육 당국이 출제오류였음을 공식 인정하고 피해 학생들을 전원 구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법원의 판결이 있었기에 바뀐 것이지만 어쨌든 성적이 재산출돼 이 문제로 지원한 대학에 불합격된 학생들은 추가 합격이 가능해졌다. 1994년 수능 도입 이후 출제 오류가 법원에서 인정돼 완료된 대입 결과가 뒤바뀌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 오류 인정 판결의 유명한 전례는 1964년 중학교 입시의 소위 '무즙 파동'이다. 문제를 보면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찹쌀 1kg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 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 이 밥에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섭씨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위 3.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
서울시 공동출제위원회는 보기 1번 '디아스타제'가 정답이라고 발표했으나, 2번 '무즙'을 답이라고 선택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무즙도 답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출제위원들이 이랬다저랬다하면서 논란을 키우다 결국 1번만 정답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하자 2번 무즙 학부모들은 직접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교육감을 찾아 <무즙으로 만든 엿 먹어라>며 엿을 던지고 항의 시위를 했다. 원하는 명문 중학교에 낙방한 학부모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은 <'무즙도 정답'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학생 모두를 입학시키라>는 판결을 내렸다.

1967년 중학교 입시에서는 이른바 '창칼파동'이 있었다. 미술 13번 문제,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 원래 정답의 그림은 오른손잡이가 창칼을 사용하는 모습인데, 왼손잡이가 사용하는 방법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낙방한 학생의 부모들은 복수 정답을 주장하면서 시위를 벌였고 교장과 교감을 연금하기까지 했다. '무즙 파동'과 '창칼파동'은 입시 제도 자체를 바꿔 중학교 무시험 진학을 가져왔다. 

대학별 고사에서도 출제 오류가 지적된 적이 있다. 1995년 성균관대 김모 교수가 수학시험을 채점하던 중 오류가 있음을 출제위원에게 지적하다가 같은 해 10월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전국 대학 수학과 교수들이 <성균관대 입시 문항에 수학적인 오류가 있으며 김 전 교수의 재임용 탈락도 문제가 있다>고 연대서명 해 법원에 제출했지만 김 교수는 복직소송에서 패소했다. 그가 석궁을 들고 재판한 판사의 집을 찾아간 사건은 영화 <부러진 화살>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람이 사는 사회 어디에서든 실수나 오류가 있다. 수능은 해마다 60만 명 정도의 학생이 응시하는 최대 국가시험이다. 실수나 오류로 논란을 남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교과서가 진실보다 앞선다>는 식으로 발생한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혼란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교훈을 평가원이 똑똑히 배웠기를 바란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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