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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10월 26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11년부터 수십 명의 여성이 결성한 '운전하는 여성'이라는 단체가 생기면서 이날을 기해 '운전 시위'를 한다. 여성들이 운전하다가 체포되는 날. 그렇게 운전을 하고 체포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하면서 "우리에게 운전을 허하라!"고 호소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기름 많이 나는 부자 국가만이 아니다.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친미국가여서 좋게 포장된 모습으로 미국 언론이 표현하니까 그런가 생각하겠지만 이슬람교 법인 샤리아를 엄격하게 시행하며 여성 차별이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다. 사우디 여성은 아직도 투표권이 없다. 내각에 여성 각료가 있을 수 없고 여성이 선택할 직업에 제한이 있다. 여성은 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이 어렵다. 사우디에는 영화가 없다. 영화제작이 아니라 상영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공식적으로 발렌타인데이를 즐기는 것을 금지했다. 초콜릿, 꽃, 붉은색이 들어간 제품은 발렌티인데이 기간 중 금지된다.

'10월 26일 운전'이라 명명된 캠페인은 사우디에서 여성의 운전을 허용해달라는 운동이다. 10월 26일은 사우디 공무원의 연휴가 끝나고 돌아오는 시점인데 이날을 기해 운전할 줄 아는 여성들이 운전을 감행하고 무면허운전 혐의로 벌금과 함께 수일간 구류 처분을 받는다. 사우디는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유일한 국가다. 명문화된 법은 없지만, 이슬람 전통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이 운전하다 적발되면 모두 무면허운전이 된다.

여성의 운전을 금하는 것은 코란에 근거한다고 금지론자들은 주장한다. 코란이 만들어진 것은 말이나 낙타를 타던 시대로 자동차는 상상도 못 하던 시대인데 무슨 코란에 근거하다니 의아하겠지만 코란의 엄격한 해석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여성과 남성이 섞이는 것을 금지했기에 여성이 운전을 하게 되면 모르는 남성과 섞여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왕의 자문기구를 위해 사우디 학계가 준비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에게 운전을 허락할 경우 미혼의 사우디 여성들이 처녀성을 잃는 일이 확산될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

운전을 못 하게 하니 사우디 여성은 집에 갖히거나 남성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된다. 형편이 좋은 집은 여성을 위한 남성 운전자를 고용하는데 나라 전체로 이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우디 여성 중 비행기 조종사가 있는데 공항까지 남자 친척이 운전을 해주는 차를 타고와 비행기를 조종한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어느 인도 변호사가 <모든 종교의 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여성 차별을 한다>는 말을 했다. 성경에도 불경에도 모두 여성을 차별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슬람교 법인 샤리아를 엄격히 국법으로 시행하는 나라를 보면 과연 그 법이 사람을 위한 법인지 법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지 혼동이 간다. 그곳에는 샤리아가 왜곡돼 적용된다는 느낌이 든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거나 심지어 정당화하는 종교적 신념과 관습은 애초에 없었을텐데 누군가가 왜곡했다는 느낌. 여성이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곳에는 그런 왜곡이 흔히 발견된다. 

사우디의 여성 운전 금지가 반면교사가 되는 10월 26일이 온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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