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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자선 경매에 나온 교황의 하얀 모자

hherald 2014.09.22 18:45 조회 수 : 806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자가 경매에 나왔고 하루 만에 10만 5천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억 4천만 원까지 치솟았다는 외신이 있었다. 온라인 경매사이트인 이베이를 통해 경매는 일주일 정도 이어지는데 마감일에는 얼마까지 오를지 지금으로써는 모르겠다. 경매를 통해 얻은 돈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탈리아의 한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이라 한다. 개발도상국이 그렇듯 콩고민주공화국은 출생률이 높아 인구의 절반이 15세 미만이지만 영아·유아 사망률이 높아 전체 사망률도 높은 곳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자신의 모자를 자선 경매에 내놓은 게 아니다. 이탈리아 TV 프로그램의 사회자인 배우가 교황으로부터 받아 자선 경매에 부쳤다. 그는 지난여름 새벽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 광장으로 향해 교황을 만날 수 있는 광장의 앞자리에서 앉았다. 그 배우는 차량에 탑승하려는 교황에 다가가 로마의 한 상점에서 산 흰색 주키토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내밀었고 교황은 차량을 멈추도록 한 뒤 이를 살펴보고는 자신이 쓰고 있던 주키토와 맞바꿨다. 이 모습은 교황청 TV에 그대로 담겨있다.

경매에 나온 모자는 '주키토'라고 이탈리아어로 '작은 바가지'라는 뜻이다. 실제로 박을 반 잘라 엎은 모양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들이 머리 위에 쓰는 작은 테두리 없는 모자로 직책에 따라 색깔이 다른데 교황은 하얀색, 추기경은 빨간색 또는 진홍색, 주교와 지방 대수도원장은 보라색, 사제와 부제는 검은색이다. 사제와 부제가 주키토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모자가 머리의 정수리 부위만 겨우 가릴 정도로 작아 저런 모자를 왜 쓸까 의구심이 갈 수 있지만 처음 이 모자는 매우 실용적인 용도로 생겼다. 중세 수도자는 머리 가운데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이 없다. 세속을 떠나 하느님께 나를 봉헌한다는 의미로 가운데 머리만 깎은 것이다. 스님이 머리를 깎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데 정수리 주위만 머리카락이 없으니 여름에는 햇볕이 직접 맨살에 닿아 따가웠고 겨울에는 춥고 시렸다. 그래서 성직자의 머리를 추위와 습기로부터 보호해주던 것이 주키토였다. 당시 성직자들은 정수리 부분만 항상 머리카락을 짧게 유지하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그래서 정수리에 새똥을 발랐다고 한다. 자동차에 떨어진 새똥을 놔두면 차 표면이 부식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독한 새똥을 머리에 바르면 모근을 녹여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증한 주키토에는 이런 의미도 녹아있는 걸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전에도 자선 경매에 오토바이를 낸 적이 있다. 오토바이 마니아들은 환장한다는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를 경매에 내 24만 1천500유로(약 3억 5천200만 원)에 낙찰된 바 있다. 교황과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의아할 수 있으나 그 오토바이는 할리 데이비드슨 창립 110주년을 맞아 로마에 모인 오토바이 팬들을 상대로 축복 미사를 집전하면서 받은 선물이었다. 할리 데이비드슨 측은 이를 기념해 흰색 1천585cc 다이나 슈퍼 글라이드 모델을 교황청에 증정했고 판매수익은 로마 기차역 등 빈민 급식시설 공사에 사용됐다.

미다스의 손이라고 할까. 전용차인 벤츠 승용차를 세워두고 서민용 승용차를 즐겨 타는 검소한 성품의 교황이건만 어찌 보면 그가 만지는 것은 모두 세속의 가치조차 달라진다고 평가하면 너무 세속적일까. 그런데 진짜 소중한 것은 아예 거래할 수 없듯 값을 따질 수 없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너무 많다. 제아무리 좋은 의미로 미다스의 손이라 해도 표현이 모자란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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