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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대통령의 명절 선물

hherald 2014.09.08 18:30 조회 수 : 732

 

올 추석 박근혜 대통령은 잣, 유가찹쌀, 육포가 든 선물세트를 마련했다. 선물 대상자에는 독도의용수비대ㆍ제2연평해전ㆍ천안함ㆍ연평도 포격 희생자 유가족, 일본군 위안부와 환경미화원, 사회복지사, 등이 포함됐다. 그런데 선물 배송 송장에 선물을 보내는 주체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홍길동'으로 기재돼 있다고 한다. 최대한 대통령의 선물이라는 것을 표시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박 대통령의 선물에 대통령의 이름을 넣지 않는 것이 대통령의 선물을 받는 것이 무슨 완장을 찬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시대 상황에 따라 의미가 많이 달랐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은 봉황 문양이 새겨진 인삼, 수삼을 보냈다. 보스 기질이 강했던 두 군인 출신 대통령은 명절 선물을 무슨 왕의 하사품처럼 만들었다. 자상하고 어진 왕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내린 하사품을 받았던 사람들도 주로 그 시대 권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군부나 주변인이 대부분이었다. 봉황 인삼을 받는 것이 측근이란 완장이요, 한통속의 징표였다. 선물을 받는 것은 바로 대통령이 '챙기는 사람'이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이들 군인 대통령이 '봉황 인삼'만 준 것은 아니다. 정치권 및 각계에 거액의 떡값 봉투를 별도로 하사했다고 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현금을 돌린 것으로 정평이 났다. 1백만~2백만 원을 국회 의원회관으로 보냈다는데 이른바 '태우 떡값'이었다. 천문학적 비자금을 다뤘던 만큼 떡값이란 이름의 현금을 백만 원부터 중요도에 따라 천만 원까지 줬다고. 제 돈이 아니니 그렇게 쓸 수 있었던 모양이다. 국민의 돈으로 자기네만 잘 먹고 살던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이 특산품으로 바뀐 건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다. 이 시절 선물은 단연 'YS 멸치'. 대통령이 되기 전 명절만 되면 거제도에서 잡아 올린 멸치를 동료 정치인과 기자들에게 돌려 YS 멸치는 국회 주변에서 유명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멸치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여러 지역 특산품 채워졌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이 지금처럼 지역 안배를 고려한 지역 특산품 조합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지역감정 극복이 평생의 화두 가운데 하나였던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다. 애주가였던 노 대통령은 술을 빼놓지 않았는데 호남 복분자와 영남 한과를 하나로 묶은 국민 통합형 선물을 만들어 보내는 식이었다. 소년 소녀 가장, 극빈층, 수해 지역 등 불우한 계층을  선정해 선물했는데 2004년엔 남북 화해협력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더 해 지역 특산품과 지역 민속주에 북한 금강산 원산 호두가 추가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전국 도별로 빠짐없이 특산품을 한가지씩 품목에 담았는데, 대통령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서 술은 제외됐다. 2009년 설에는 대구달성의 4색 가래떡을 선정해 달성이 지역구였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화해 제스처를 보였고 2008년 추석 때 강원 인제 황태의 원산지가 러시아산이어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선물에 든 육포는 고기를 한결같이 저미고 정성스럽게 말린다고 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감사의 마음과 함께 보은의 의미를 내포한다는데 대통령을 향한 우리 심정도 그렇다. 제발, 선물의 의미처럼 제발 그래 주기를...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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