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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2경기만 하고도 2패로 예선 탈락이 확정된 영국 대표 선수(정확히는 잉글랜드 대표)들에 대한 팬들의 분노가 TV에서도 그들을 보고 싶지 않다는 데까지 닿았는지 대표 선수들이 출연한 TV 광고가 곧 사라진다고 한다. 성적이 좋았다면 지금쯤 TV 광고를 온통 도배할 선수들의 모습은 곧 다른 광고로 대체된다고. 광고를 보면서 월드컵 탈락의 울분을 되새기고 싶지 않다는 팬들의 분노가 광고 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그냥 TV CF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비아냥을 먹고 사라질 처지다. 제라드의 광고는 오버헤드킥으로 득점을 올리는 모습인데 <제라드가 득점했다. 그런데 머리로, 반대편 골문으로>라고 비꼬았다. 우루과이와 경기에서 백헤딩으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을 비꼰다. 맨유의 공격수 대니 웰벡은 샌드위치 광고에 출연했다. 공격수로서 활발한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는 의미로 <웰벡이 월드컵 탈락으로 '샌드위치가 축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고 조롱한다.

스포츠에서 특히 월드컵처럼 큰 경기에서는 '이기면 영웅, 지면 역적'의 단두대식 평가가 곧잘 나온다. 기대치가 높을수록 이 극단적인 평가의 냉혹함도 더해지는데 그리보면 스포츠도 참 비정한 무대다.

비정함의 극단적 사례가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남아메리카 굴지의 수비수로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했다.미국 월드컵 조별예선 미국과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콜롬비아로 귀국한 직후 나이트클럽에서 괴한에게 총격으로 살해당했다. 이 사건도 지나친 기대감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콜롬비아는 지역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5 : 0으로 대파했고 펠레가 우승후보로 꼽는 실력이었는데 약체 미국과의 경기에서 에스코바르가 자책골로 져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콜롬비아 범죄 조직에서 선수단을 협박하자 귀국을 두려워했고 감독은 다른 나라로 도망갔다. 에스코바르는 자책골에 대한 죄책감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며칠 뒤 괴한이 쏜 총에 살해당했다. 섬뜩한 것은 괴한은 12발의 총을 쏠 때마다 '골'을 외쳤다고 한다. 개인적 원한인지 거액의 돈을 걸었다가 날링 도박 조직이 개입됐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또 하나의 사례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축구대회의 북한 대표 선수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리줄로의 '마지막 수용소'를 보면 이탈리아를 1 : 0으로 격파하고 8강에 진입해 파란을 일으켰던 북한 축구 대표팀이 귀국 뒤 사상문제로 탄압을 받았다고 한다. 이탈리아를 꺾고 북한 선수단은 술, 여자, 음악으로 승리를 자축한다. 이 파티에 당시 북한 축구영웅 박두익은 몸이 아파 참석하지 못했다. 한편, 북한에 패한 이탈리아는 귀국길에 성난 국내 팬들에게 토마토 세례를 받는 등 치욕을 당했다. 신나게 파티를 한 북한은 다음 포르투칼 전에서 3 : 0으로 이기다 5 : 3으로 역전패한다. '이기면 영웅, 지면 역적' 아닌가. 박두익을 제외한 모든 선수단이 '부르주아, 반동, 부패한 서방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찍혀 모두 20년형을 받고 정치범 수용소 등에서 복역했다고 한다.

이번 잉글랜드 선수들의 TV 광고 퇴출도 영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영웅의 모습으로 남아주길 원한 기대치에 못 미친 울분이 만든 스포츠 잔혹사다. 그런데 그것이 스포츠 아닐까. 기대치에 맞춤식으로 나오는 결과, 스포츠가 그렇게만 된다면 누가 스포츠에 열광할까. 잉글랜드도 그렇지만 우리라고 알제리에 그렇게 완패할 줄 알았던가. 월드컵은 둥근 공을 차는 것. <공은 둥글고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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