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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프랑스에서 어느 청년이 '메이드 인 프랑스'(Made in France) 제품으로만 9개월 동안 생활하는 도전기가 프랑스에서 방송됐다. 청년은 프랑스제가 아닌 모든 물건과 이별해야 했다. 영국제 자전거, 태국산 바지, 모로코제 속옷, 과테말라산 커피, 중국산 아이폰, 텔레비전, 냉장고 등 모든 외국산 제품을 버리니 그의 아파트에 기존 제품 중 4.5%만 남았다고 한다. 프랑스 여자친구와 고양이는 그대로 곁에 남아 다행이었다고. 그런데 이 물건을 프랑스제로 다시 채우는 것이 더 문제였다. 신발은 구했지만, 프랑스산 칫솔은 정말 귀했고 냉장고와 손톱깎이는 프랑스산이 없었다. 외국에서 수입된 부품을 사용하지 않는 값싼 프랑스 차를 구하기 어려워 모터 달린 자전거를 샀다. 벨기에 맥주를 끊고 프랑스산 포도주와 맥주를 마셨고 초밥, 피자를 먹지 않고 할리우드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 같은 프랑스 청년의 국산품 애용 도전기는 프랑스 산업부 장관이 제조업을 살리도록 프랑스 제품을 사달라고 국민에게 촉구한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국산품 애용. 참 오래 묵혀진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국산품 애용을 애국과 동일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배우고 살았던 세대는 워낙 철저히 교육을 받아서인지 아직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하고 괜한 부담을 안을 때가 있다. 국산품 애용.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 제품을 이용하면 한국 시장이 살고, 기업이 살고, 기업 노동자 살고, 한국 경제가 사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앞서 프랑스 청년의 국산품 애용 도전기를 만든 장관의 호소도 국내 제조업을 살리도록 프랑스 제품을 사달라는 호소였다. 프랑스산 제품 소비로 내수 경기를 살려 기업을 살리려는 취지다.

외국에 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데 해외동포의 국산품 애용 역사를 보니 1997년 미국 한인회가 "어려움에 처한 본국 경제를 돕기 위해 해외동포들이 할 수 있는 뜻있는 정성은 국산품 애용"이라며 벌인 운동이 대표적으로 나왔다. 얼마나 열성적으로 했던지 미국의 단체장들은 "국산품애용이 본국 경제를 회생시키는 한 방안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국산품 애용을 효과적으로 하려고 "한인들의 의식개혁"에 초점을 맞출 정도였다. 국산품 애용을 강요하고 당연시했던 시대의 <국산품 애용 = 애국자>라는 등식이 다시 등장했던 셈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국산품 애용으로 애국한다는 생각에 상당하다. 2011년에는 뉴욕총영사관 보유차량 6대 중 3대가 외제차량이라고 한국의 산업을 증진하는 국산품 애용에 맨 먼저 정부가 앞장서야 하는데 이래도 되느냐는 식으로 꾸짖고 있다. 이쯤에서는 과하다는 느낌. 한국 내수용과 수출용 제품의 가격 차를 비교하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국산품 애용 = 애국자>의 과유불급이랄까. 

<국산품 애용 = 애국자>의 등식이 바로 단지 재벌 기업을 위한 것이었다면, 소비자를 국산품을 애용하는 애국자로 만드는 것이 국내 기업의 판매 전략이라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허울 좋은 논리를 버려야 한다. 좋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소비자 행복의 권리다. 우리는 이미 100% 한국 제품으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게 살려면 비 오는 날 외출도 못 한다. 한국에는 우산 공장이 없다. 

프랑스 청년은 100% 프랑스 제품으로 살려고 했지만 벽지와 포크를 바꾸지 못했다고 한다.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기업들도 돈 안 되는 사업은 이미 버렸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글로벌 시장의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는 기업의 제품을 사는 것이 협소한 애국보다 세계 소비자로서 할 일이요 권리로 보인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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