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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동지헌말冬至獻襪 - 어버이 날 단상

hherald 2015.05.04 18:39 조회 수 : 955

 


해마다 어버이날이 오면 누구나 풍수지탄風樹之嘆을 실감한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로 그 풍수지탄. 바람과 나무의 탄식.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자식의 슬픔이 한이 된다는데 효도야 살아 실제 해도 해도 가시면 못다 했다는 한이 되지 않을까.

어버이날이나 어머니 날을 두고 부모 위하는 맘은 동서가 같다. 우리가 사는 영국에는 어버이날이 아니라 어머니 날, 아버지 날을 따로 뒀다. 어머니 날을 Mother’s Day라 하는데 사순절 네 번째 일요일이다. 그래서 Mothering Sunday라고도 한다. 중세 하인처럼 남집살이하던 가난한 아이가 하루 휴가를 받아 어린 시절부터 다니던 교회에 가 성모 마리아를 찬양할 수 있도록 한 데서 유래했다. 멀리서 온 자식과 만난 부모. 가난한 가족이 만났던 사순절의 일요일이 Mothering Sunday였다. 

미국 어머니의 날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이다. 어머니를 하루 동안 집안일에서 해방 시켜준다는데 어디나 어머니는 집안일에 시달리나 보다. 아버지의 날은 6월 셋째 주 일요일인데 일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말은 없다. 캐나다는 미국과 같다. '무친지에'라는 어머니 날, '푸친지애'라는 아버지 날이 있는 중국도 날짜가 미국과 같다. 국제적으로 짬짜미를 했는지 일본도 날짜가 같다. 어버이날이라고 함께 두지 않고 따로 둔 것도 마찬가지. 재미있는 곳은 그리스. 1월 8일이 어머니의 날이다. 그리스 남자는 같은 남자로서 부러운 존재다. 워낙 남아를 선호하는 분위기에 남자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안 시키다 보니 결혼 후에도 할 줄 모른다. 그러나 해마다 1월 8일에는 남자와 여자가 배역을 바꾼다. 남자는 집에서 애 보고 빨래하고, 청소한다. 여자들은 이날 밖에서 실컷 먹고 논다. 남자들은 문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거리에 나오면 여성들이 물을 퍼붓고 옷을 찢는다. 저녁이 되면 남자도 거리에 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우리나라 어버이날은 처음 어머니 날로 시작되었다. 1956년 지정됐다가 아버지가 서운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와 1973년 어버이날로 바꾸었다. 다분히 미국의 영향으로 어머니 날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우리에게 전통적으로는 어머니 날이 있었다.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고 12월 동짓날 자녀들이 어머니께 정성스레 만든 버선 한 켤레를 드리는 풍속이 있었다. 동지가 지나면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진다. 동짓날 드리는 버선을 신고 이날부터 길어지는 햇살을 밟으며 햇살처럼 오래 사시길 기원했다. 아름다운 풍속이다.

올해 새 한인회는 5월 9일 한인종합회관에서 어버이날 행사를 한다는 현수막이 뉴몰든 거리에 붙였다. 식사와 공연을 준비하며 카네이션도 맞췄다고.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이국에서 어렵게나마 이런 자리를 만드는 이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감사를 전한다. 북한동포들의 모임인 재영한민족협회에서도 이날 어버이날 행사를 겸해 야유회를 하는데 어린이가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어른들께 달아 드린다고 한다. 기특하다. 

붉은 카네이션의 꽃말은 '건강을 비는 사랑'과 '존경'이다. 아버지 어머니께 그 이상 무엇을 드리랴. 오월에 되살리는 동지헌말冬至獻襪이 따습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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