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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추석, 차례상이 그립네요

hherald 2014.09.01 19:08 조회 수 : 721

 


추석이 온다. 예년보다 일찍 9월 초에 추석을 맞으니 마치 이제 여름은 완전히 비껴 앉았다고 하는 듯하다. 오늘 내리는 비도 가을비 느낌이다.

이국의 삶에 명절이 크게 실감 나지 않지만 그래도 설이나 추석이 되면 안부 전화를 한 번이라도 더하게 되고 한국 가게에 놓인 명절 음식에도 한 번 더 손이 간다.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는 비싼 제철 과일을 보면 명절이 왔음을 더 실감한다. 탐스러운 한국산 포도와 배를 보니 절 한 번 하고 떡 쳐다보고, 절 한 번 하고 곶감 쳐다보던 그 시절의 제사상도 떠오른다. 이곳 영국에서도 어느 한국인 가정은 이번 추석 차례상에 저 과일을 올리겠지.

제사를 지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어동육서(魚東肉西), 좌포우혜(左脯右醯),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제사상 차리는 법에 대해 몇 가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집안마다 다르다. '의례는 가가 (家家橋)' 라고 하듯 각 집안에 따라 예법과 습관이 다르고, 지방에 따라서도 다르다. 어느 것이 옳다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속담도 있다. 그렇지만 제사상을 차리면서 어느 정도 따르는 소위 '차례상 차리는 법'이 있다. 그것이 <어동육서 : 물고기는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좌포우혜 : 포는 왼쪽에, 식혜는 오른쪽에>, <홍동백서 :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조율이시 : 과일은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등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들은 바로는 '조율이시'가 조선의 권력체계를 따른 상차림 순서로 대추는 씨가 하나로 왕을 의미하며, 밤은 밤송이 안에 밤톨이 3개 들어 있어 삼정승을, 감은 씨가 6개로 육조판서를 의미하며, 배는 씨가 8개로 팔도수령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래서 상차림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칙이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제사와 관련된 법도의 교과서로 지칭되는 중국의 <주자가례>나 율곡 이이 선생의 <격몽요결>에도 '어동육서'같은 말은 없다. 오히려 당시에도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문제로 시끄러웠나 보다. 율곡 선생도 <격몽요결>에서 "지금의 세상 습속을 보면 예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서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같지 않으니 매우 가소로운 일이다"라고 했으니 역시 제사의 법도는 그 집이 법이요, 답인 모양이다.

이런 법칙이 별반 없었으며 이를 지켰던 이들도 그 근원을 몰랐다는 사례는 간혹 있다. 유교 주자학의 대가이자 노론의 영수로 장례 때 왕이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가의 '예송논쟁'으 일으킨 송시열 선생이라면 이런 예법의 뿌리를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송시열의 <송자대전>을 보면 제자가 '어동육서의 이유가 뭐냐'고 질문한다. 그에 대한 송시열의 답이 '중국을 기준으로 하면 동쪽이 바다이고 서쪽이 육지라서 어동육서다'라고 했다는데 전문가들은 심각하게 답변한 걸로 보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영혼이 없는 답변이라면 과한 표현일까. 주자학의 대가도 '근본은 모르겠고 그냥 그런 이유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한다는 것이다.

추석의 기본 성격은 천신제다. 계절마다 새로 나는 곡식이나 곡물, 과일, 생선 같은 것을 종묘에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추석 차례상은 우리 땅에 나는 제철음식, 조상이 좋아했던 음식을 바치는 것이었다. 제사상에 바나나를 올린 모습이 과거 코미디프로 소재가 됐지만 지금은 안동의 종갓집 제사상에도 오른다. 율곡 선생도 <격몽요결>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주로 사랑하고 공경하면 그뿐인 것이다. 가난하면 집안 형편에 어울리게 하면 된다"라고 했다.

올 추석 제사상이 있다면 더 좋고, 없어도 조촐한 상을 만들어 가족이 앉아보자. 송편이 하늘의 씨앗인 보름달과 알알이 여문 알곡을 뜻한다는데 송편을 먹으며 달 보기를 하는 운치를 한 번쯤 누려보면 어떨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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