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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종교계가 일제에 협력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전통 종교윤리인 유교 쪽도 일부에서 일제의 식민정책에 협력했다. 대표 인물이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해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왕을 위해 태평양전쟁에 나가 싸우다 죽으라고 한 '이명세'다. '춘산명세(春山明世)'로 창씨개명한 유림. 그는 조선에서 징병제를 실시하게 된 결정을 축하하며 <축징병제실시>라는 한시를 지었다. 

在家倍覺生男重(집안에선 아들 난 것 중한 일임을 더욱 알고) 爲國當思死敵輕(나라 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 無憾吾仍有願(우리들은 후회 없나니) 勘戰亂返昇平(하루빨리 전란의 시대가 평화의 시대 되길 바랄 뿐이라네)

이런 글로 일제에 곡학아세하며 식민종주국의 하수인으로 일제시대 그는 부와 영광을 누렸다. 그러면 조선의 젊은이들을 이국의 전쟁터에서 죽게 한 그가 해방과 함께 단죄됐는가? 아니다. 그의 부와 영광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성균관대학교 이사장, 성균관장까지 올랐다. 1972년 80세로 사망해 천수를 누렸다. 물론, 이명세는 대통령 직속기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됐으며,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랐다.

그러다 한동안 잊혔던 이명세는 손녀인 이인호 전 교수가 한국방송(KBS)의 새 이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다시 부각됐다. 표면상으로는 조부의 친일 행적이 왜 손녀의 공직 임명에 걸림돌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지만 사실 손녀의 역사관이 <친일한 사람들이 모두 친일파가 아니고 상당수가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한 애국자였다>라는 식의 허무맹랑한 기만이었기 때문이다.

공분을 자아내는 이런 역사관은 반드시 문제로 터진다. 국정감사에서 KBS 이인호 이사장은 "백범 김구는 1948년 대한민국 (단독)독립에는 반대했기에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극우나 뉴라이트 일각에서는 백범을 '테러리스트', '빨갱이'로 치부하지만 그의 나라 사랑 정신까지 부인한 적은 없는데 이 이사장은 백범이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했다는 식의 사고와 발언을 한 것이다.

따지자면 이인호 이사장 같은 사람이 반국가사범이다. 우리 헌법은 그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백범은 임시정부 주석임이 역사적 사실이다. 백범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다. 이를 부인할 수 있는가. 그리고 백범이 반대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 반대가 아니라 '분단'을 반대한 것이다.

이런 행위는 친일파의 손녀가 조상의 반민족 죄과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역사를 왜곡해 그 과오를 숨기고 자자손손 누리는 기득권의 정당성을 분칠하려하는 얕은 속임수로 보인다. 친일파를 살리려 백범을 비롯한 독립투사를 폄훼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도 간혹 보인다. 더러는 잡문으로 억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무식해서 이런 소리를 한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알라고 타이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한다면 그런 짓은 천벌을 받는다. 알아들어야 할텐데.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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