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목을 뜻하는 ‘전과’(全科) 라는 이름의 참고서를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국민학교를 다녔거나 초등학교를 다녔거나 당시 이 참고서 한 권이 있어야 집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고 숙제의 답을 맞힐 수 있었다. 그런데 간혹 내가 푼 숙제의 답이 친구와 다를 때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판정을 내려주기 전까지는 서로 답이 바르다고 우겼다. 왜냐하면 전과를 보고 숙제를 했으니 답이 틀릴 리가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도 철석같이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도 전과를 보고 숙제를 했다. 둘 다 전과를 봤는데 하나는 동아전과, 다른 쪽은 표준전과. 7, 80년대 참고서 시장을 나눠 먹던 두 개의 대표 전과가 국민학교 문제 풀이에도 때때로 다른 답을 낸 것은 두 출판사의 '시각의 차이'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동아출판이 1953년 동아전과를 내면서 전과 참고서 시대를 열고 3년 뒤 교학사가 표준전과를 만들었다. 전과는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초등학생에게는 없으면 안 되는 책이었지만 학생 수가 줄고, 인터넷 정보가 쏟아지고, 학교에서 숙제를 내지 않는 등 교육정책이 바뀌다 보니 수요가 줄어 2013년 표준전과는 폐간된다.
교학사는 표준전과, 표준수련장을 필두로 우리나라 초등(국민), 중, 고등 교육에 일조했는데 문제는 2013년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를 만들면서 생긴다. -공교롭게도 2013년에 교학사의 대표 상품인 표준전과가 폐간됐다 - 그전에도 교학사는 간혹 중, 고등학교 교과서 집필 사업에 참여했지만 유독 2013년에 만든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는 역사학계에서 <교학사가 극우적 성향에 친일반민족행위자와 독재자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발행했다>고 규탄했다.
이 교과서를 반긴 이들은 뉴라이트 계열, 진보진영으로부터 친일파의 자손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던 김무성 의원 중심의 새누리당 일부 세력, 일본 극우 언론인 산케이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이었다. 특히 산케이신문은 <한국의 교학사 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도입했다>며 이를 부정해온 <한국의 반성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 한국사교과서는 거의 국민적 저항을 불렀다고도 할 수 있는데 교학사 서적에 대한 불매 운동이 일고 당시 리서치 결과, 교과서로 부적절하다는 대답이 77%, 교과서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답은 18%였고 실제 교과서로 채택한 학교가 전국에서 고작 한 곳이었다.
한국사 교과서로 '사태'를 만들었던 교학사가 이번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합성사진을 공무원 시험용 한국사 교재에 활용해 또 물의를 빚었다. 해당 사진은 드라마 추노에서 붙잡힌 노비에게 낙인을 찍는 장면에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해 일베에서 퍼뜨린 것이다. 교학사는 단순 실수라 했지만 뉴스를 제대로 보고나면 단순 실수라 믿는 이는 없다.
유독 역사교과서를 두고 그동안 교학사가 보여온 행태가 그들의 해명을 더 믿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변명이 더 궁색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표준전과의 추억마저 퇴색하는 씁쓸함이 온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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