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헤럴드 단상

 

영국에 사는 북한 이탈 주민들은 두 개의 단체로 나눠 각각 활동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있었다'. 2008년 처음 만들어진 '재영조선인협회'와 2014년 창립한 '재영한민족협회'는 각 단체가 나름의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며 송년회,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도 따로 했다. 흔히 탈북자로 불리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대한민국이 아닌 제3국에까지 와서 이렇게 둘로 나뉘어 반목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2008년 영국에 사는 탈북자가족 5가구가 모인 것이 영국 탈북자 단체의 시초라는데 현재 1,000여 명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는 영국 거주 북한 이탈 주민들의 정착을 돕고 친목을 도모할 단체가 나뉘어 반목한다는 것은 분명 스스로에게도, 전체 한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내 개인적인 견해. 이 단체들은 쉽게 봉합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두 단체는 정체성 논란으로 분열됐다고 하나 그 속에 숨겨진 많은 복합적 분열 사유가 있다. 그래도 해결의 싹수조차 보이지 않았던 당시 한인회와는 달리 탈북자 단체는 조만간 뭉쳐질 것이라 믿은 데는 내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사이트에 '재영한민족협회' 명의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김조국'이라는 이름을 쓴 이 글은 <탈북자이지만 어머니 조국, 북한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좀 더 보면 <어머니 당의 품속에서 행복하게 살 때는 그 고마움을 다 알지 못해 못난 자식 어머니 속을 태우듯 불평을 부리며 조국을 떠났지만 정처 없이 해외를 떠돌며 이국에 나와보니 고마운 어머니 조국의 품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다>며 <어머니 조국에 지운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 해서 한마음을 모아 '재영 한민족 협회'를 결성하고 조국통일 성업에 바치기로 결의했다>는 내용이다. 

 

누가 봐도 '재영한민족협회'의 이름을 도용한 음해로 보였다. 하지만 당시 두 탈북민 단체의 반목의 골은 깊었고 정체성 문제가 마찰의 주원인이었다. 따라서 이런 사건은 근거나 사실과 관계없이 모호한 표현으로 상대에게 의구심의 상처를 안겨주기 딱 좋을 먹이다. 일견 유치하나 사건의 전말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파급 효과는 크다. 말하자면 '재영한민족협회'에 종북의 딱지를 씌우기 딱 좋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재영조선인협회' 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이런 글이 올라온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는 단번에 <현지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공작일 수 있다. 탈북민 사회의 분열을 조장시키기 위한 계략일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뭐는 뭣보다 진하다는 표현이 이런 경우 해당하는지 분열돼 지지고 볶는 상황이지만 선은 분명했다. '재영한민족협회'에 씌우는 일말의 의구심도 없었다. 오히려 이 두 단체의 분열을 두고 이익을 좇는 당시 한인사회의 또 다른 이간질이 더 낯뜨거웠다.    

 

며칠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두 단체가 두 차례의 만남을 통해 이렇게 합의했다는 것이다. <1. 두 협회는 재영 탈북자들의 권익을 위하여 적극 협력 하도록 한다. 당면하게는 양쪽 협회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상호 적극 동참하고 협력하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한다. 2. 조건이 성숙하면 재영 탈북자들의 의견을 수렴, 두 협회를 합치거나 두 협회를 그대로 두고 활동은 따로 하면서 재영 탈북자 문제들을 서로 협력하고 상의하는 하나의 상설 기구를(협의회) 조직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요즘 영국에 사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비자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많다 하는데 두 단체가 함께 돕는다니 큰힘이 될 소식이다.

 

이 소식을 받고 사흘 만에 두 단체가 같이 체육대회를 한다며 초청장이 왔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놀랄 만큼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 진정으로 화합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만나니 이렇게 쉽게 해결되나 보다. 좋은 일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 참 좋다. 

 

헤럴드 김 종백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