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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진짜 부자富者

hherald 2016.02.22 20:00 조회 수 : 1695

 

 

어제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가 근검절약을 삶의 신조로 삼은 검소한 억만장자들을 소개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이케아의 설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 등이 그 많은 재산을 두고도 얼마나 아끼고 절약하며 사는지를 알렸다. 간단히 소개하면 버핏은 세계에서 3번째로 돈이 많지만 1958년에 우리돈 약 4천만 원에 구입한 집에 아직 살고 있다. 저커버그의 차는 수동 폴크스바겐, 옷장에는 회색 반소매 티셔츠 9벌과 후디 6벌이 걸려 있다. 인디펜던트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이케아의 설립자 캄프라드의 일화는 재미있다. 비행기를 탈 때는 이코노미석, 자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10년 된 낡은 볼보를 손수 운전했다. 호텔 객실에 있는 작은 냉장고를 '미니바'라고 하는데 여기 들어 있는 음료수가 시중가보다 비싸다. 갈증을 참지 못해 미니바의 콜라를 마시고는 인근 가게에서 같은 콜라를 사서 다시 채운다는 일화가 있다. 가히 '자린고비'라 할만하다.

 

사실 자린고비란 말도 조선시대 실존인물에서 나온 말이다. 충주에 살았다고 '충주 자린고비'로 불린 조륵이란 사람이 모델이다. 조기를 사 와서 천장에 매달곤 밥 먹으며 쳐다봤다는 그 사람이다. '자린고비'의 어원도 설에 의하면 부모 제사 때 쓰는 지방을 한 번 쓰고 태워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제문의 종이를 아껴 태우지 않고 접어 두었다가 두고두고 써서 제문 속의 아비'고(考)’ 어미‘비(驢)’ 자가 절었다고 하여 ‘저린 고비’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중요한 설이 있다. 그가 평생 구두쇠짓을 해서 모은 돈으로 가뭄에 시달리던 1만 호의 백성들을 구하자 그 지역 주민들이 감동하여 조륵 사후에 '자인고비(慈仁考碑, 어버이같이 인자한 사람을 위한 비석이라는 의미)'라는 이름의 비를 세운 데에서 와전되어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정조대왕이 하사했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자린고비의 절약보다 '기부왕'이라는 그의 선행이 더 주목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구두쇠의 느낌만 꽉 찬 단어로 인식돼 씁쓸하다.

 

앞서 소개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자 자린고비 중 많은 이가 '기부왕'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아름답다. 버핏은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에도 3조 2천억 원을 내놨다. 콜라와 햄버거를 먹는 저렴한 입맛이지만 기부에는 돈을 펑펑 썼다. 저커버그 역시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013년 미국에서 가장 큰 금액을 한 번에 기부한 사람이 저커버그였다. 당시 1조 원을 희사했는데 그는 1984년생이라 당시 29세였다. 20대가 기부왕이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며칠 전 유럽 한인사회에 있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지난 주 얼마간의 일정으로 유럽입양인후원회 행사가 런던에서 있었다. 박화출 영국회장이 유럽입양인후원회 회장이다. 각 나라 회장이 모였는데 스웨덴 입양인후원회 회장이 유럽후원회에 1만 유로를 희사했다고 한다. 유럽의 한국인 입양인을 얘기할 때 스웨덴이란 나라를 빼고 얘기가 될까 싶을 정도로 많은 입양인이 있는 나라이긴 하나 이분의 기부는 그 차원이 아니라 생색이 나지 않아도 선뜻할 수 있는 기부의 참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생색이 나지 않는 기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크든 작든 기부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기부를 펑펑하면서 생활은 검소한 억만장자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영국의 한인사회에는 참 부자富者가 많은데, 아니 부자인듯 보이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정작 돈 쓸 곳에 쓸 줄 아는 진짜 부자는 드물다는 생각. 그런 분은 가진 돈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자린고비의 과정으로만 살다가 크게 희사하는 결론은 아예 없을듯한 느낌? 그렇다면 그들은 한 번도 진정한 부자로 살지 못했다는 말이 아닐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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