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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다 아시다시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영국에 국빈방문했다. 대대적인 환대를 받았다. 국빈방문이면 으레 있는 대접인 줄 알았는데 이번 시 주석에 대한 영국의 태도를 이례적인 극진한 대우라고 말한 것은 영국 언론들이다. 예의를 다해 손님을 잘 모셨다는 것이 아니라 <영국 정부가 주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강아지 같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비판적이다. 성대한 국빈 만찬은 그렇다 치고 여왕이 만찬 메뉴와 실내장식을 직접 점검하는 등 '과한 예우'를 했다고 비난한다.

 

 

일부 영국 언론은 영국의 과한 예우를 비난하며 '고두(kowtowing·叩頭)'라는 표현을 썼다. 영국 왕실과 정부가 중국 주석에게 굽신거리는 것이 과거 중국 황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 같다는 표현이다. '고두'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고 중국 청나라 시대에 황제나 높은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예법이다. 중국에는 오래전부터 이런 인사법이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고두는 치욕의 단어다. 병자호란에 항복한 조선 국왕 인조가 삼전도에서 숭덕제를 향해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며 항복 의식을 했다. 바로 그 인사법이다. 영국도 대영제국 시절 청나라에 파견된 외교관이 청황제를 만날 때 이런 절을 하느니 마느니 마찰이 있었다. 기록을 보면 1793년 영국의 외교관 조지 매카트니가 건륭제를 알현할 때 삼궤구고두례를 요구받았지만 매카트니는 영국식을 고집했다가 결국 중국식으로 절했고 1816년 윌리엄 애머스트는 고두를 끝까지 거절해 황제를 알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후 서구 열강의 침략에 쇠퇴한 청나라는 열강의 외교관들이 하나같이 고두를 거부하자  선채로 절하는 입례를 대신했다. 신해혁명 이후 고두는 완전히 사라졌다.

 

 

영국 정부와 왕실이 '고두' 소리를 들을 만큼 아부를 한 것은 중국의 투자유치를 위해 몸부림친 것이라고 평가한다. 50조 원 정도의 투자가 걸린 마당이니 시 주석이 거북해 할 인권문제 같은 것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BBC의 표현처럼 <정부는 뜨겁지만 민심은 차>가웠다. 아니, 만인萬人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엇갈린 방문이었다. 

 

 

해외 순방 때마다 그 나라의 유명 문학작품이나 명언을 인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시 주석은 이번에도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나오는 <과거는 서막에 불과하다>를 인용했다. 템페스트는 중세시대 서로 싸운 밀라노와 나폴리를 배경으로, 복수를 통한 화해와 용서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아편전쟁과 냉전시대, 영국과 중국이 한때 대립했지만 앞으로 잘해보자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국 의회에서 이 연설을 할 때 캐머런 총리는 동시통역기를 하지 않았다. 듣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하원의장은 연설 전에 이미 시 주석을 비꼬았다. 시 주석을 소개하면서 연설을 할 이곳이 미얀마 아웅산 수치 여사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연설한 곳이라고 언급하고 <중국이 단순히 세계에서 강한 국가 아니라 세계적 도덕적 영감을 주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야 한다>고 말해 중국의 인권문제를 에둘러 꼬집었다. 시주석의 연설 도중 박수는 없었다. 저녁 만찬 연설에서는 한 술 더 떠 참석한 명사들은 시 주석의 연설에 '꾸벅꾸벅' 졸았다고 한다. 아예 관심이 없거나, 불러놓고 비꼴 건 다 비꼬니... 예를 들자면 누구더러 노래 한 곡 하라고 애써 청해 놓고 막상 노래를 하니 아무도 듣지 않고 다들 딴짓하는 어색한 분위기, 이쯤 되면 '영혼이 없는 환대'라고 할까.

 

 

영국에 오면서 꾼 시진핑의 꿈과 그를 맞는 영국 왕실과 정부 인사들의 꿈은 달랐던가. 그러게 참 달랐다. 만 가지 꿈이 서로 달랐던 시진핑의 영국 방문. 영혼 없는 환대의 원인이 있다는 걸 주인공들은 과연 깨닫기나 했을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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