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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워싱턴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별한 점심 만찬 장소는 워싱턴 성패트릭 성당의 노숙자 점심봉사. 어떤 국가를 방문해도 항상 낮은 곳과 젖은 곳을 살피는 교황의 배려라고 모두 평가한다. 이제 오히려 이상할 것 없는 일정이 됐다. 노숙자들에게 스페인어로 '부엔 아페티토'(식사 잘하세요)라고 인사한 교황은 노숙자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한 말이 "하느님의 아들도 이 땅에 노숙자로 오셨다."

교황은 이날 노숙자들을 향한 연설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를 출산하려 할 때 쉴 곳도, 집도, 머물 곳도 없었던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하느님의 아들은 지붕도 없는 곳에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요셉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도 상상할 수 있다. 왜 신의 아들이 집이 없는 것일까? 왜 우리는 집이 없을까? 왜 우리는 노숙자일까? 요셉의 이런 질문은 요즘에도 시의적절하다. 역사를 통틀어 노숙자들한테 따라다닌 질문들"이라며 "예수는 모든 사람과 연대를 보여주기를 원했다. 예수는 고통받고 눈물 흘리며 부정의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했다."고 했다. 교황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는 성경의 마태복음 구절을 인용해 나누고 베풀고 연대하는 삶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기도 속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없다. 아들과 딸, 형제자매만 있을 뿐이다. 기도 속에는 1등 계급도 2등 계급도 없고, 형제애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교황의 노숙자 사랑은 자주 접하는 소식이다.  77세 생일을 맞은 2013년 12월, 교황은 바티칸에서 미사에 초대된 3명의 노숙자와 생일 아침 식사를 같이 했다. 노숙자 중 한 사람은 반려견도 데리고 왔다. 2014년 생일에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지 않고 로마의 노숙자들에게 400개의 침낭을 선물로 나눠줬다. 교황청 근위대원들은 노숙자에게 침낭을 나눠주며 말했다. "이것은 교황이 자신의 생일을 맞이해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올해는 노숙자 150명에게 시스티나 성당 VIP투어를 제공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노숙자들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감상했다. 성 베드로 광장 근처에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어 노숙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매주 월요일에는 이발 서비스도 한다.

교황이 노숙자에게 마음을 쓰는데 교황 방문에 앞서 잘못된 과잉 조치를 보인 사례가 있다. 올해 1월 교황 방문을 앞두고 필리핀 정부는 수도 마닐라 길거리에서 떠돌거나 구걸하는 아이들을 강제로 잡아 수용시설에 감금했다. 교황이 오면 수백만 명이 미사에 참가하는데 길거리 불량배들로 혼란이 생기는 것을 막고, 거리 정화 차원이라고 했다. 필리핀 강제수용소는 악명 높다. 명백히 인권을 무시한 비인간적 행동이었다. 교황은 이를 원치 않았다.

교황이 유독 노숙자만 더 안타까워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다. 앞서 나왔듯 항상 낮은 곳과 젖은 곳을 살피는 교황의 심성이요, 사랑이다. 교황이 노숙자에게 식사 봉사를 하면 기존 봉사자들은 더 큰 동기 부여가 되고 일반인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이라는 좋은 기대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교황은 평소 "나는 신이 아니다. 나 역시 단점이 있고 인간적 연약함이 있는, 신 앞에서 죄인일 뿐인 한 사람이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청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람 냄새가 나서 더 좋지않은가.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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