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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이 땅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hherald 2015.09.14 18:40 조회 수 : 1260

 

얼마 전 주례를 섰다. 난생처음으로 주례선생님이 됐다. 처음에 주례를 부탁 받았을 때 흔히 하는 변명처럼 삶의 연륜이나 경륜이 많이 부족하다며 극구 사양했는데 결혼할 당사자들이 그래도 굳이 괜찮다기에 너무 뺄 수도 없어 주례석에 섰다. 신랑 신부는 북한이탈주민 즉, 탈북자인 북한 동포였다. 내가 주례를 겁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결혼식에는 주례가 없다는 점. 그래서 이날 내가 주례를 보다가 어떤 실수를 해도 그게 실수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결혼식이 끝나면  두 사람의 조카뻘 되는 인연이 생긴다는 점이다. 해외에 살다 보니 그동안 인연도, 사람도 보내는 것에만 익숙했다. 워낙 사람을 떠나보내는 삶에 익숙한지라 이제 사람을 맞는 인연이 그리웠다고 할까.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운명인데 알면서도 그게 참 힘들다. 귀하께서도 아실 것이고 공감할 것이다. 내가 더불어 살아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곁에 살고 있는 이들이다. 그는 한국인도, 중국 동포도, 북한 동포도 될 수 있다. 언젠가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나 호칭이 생겨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우리는 이제 이 땅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운명공동체가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기성세대의 속담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고약하게도 <배가 아프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물으면 <사촌이 땅을 사면?> 기특하게도 <구경하러 간다>고 답한다. 아이들보다 못한 옹졸함으로 아직도 배가 아픈 분들. 과연 무엇에 배가 아픈가? 난민 신청해서 영국 정부로부터 혜택받고 틈틈이 일해서 한국인 업주로부터 월급도 받는 이웃에게 배가 아픈가? 그들이 혜택을 받아서 우리 혜택이 줄었는가? 냉정히 돌아보면 이제 한인사회는 그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을 만큼 유대가 깊고 불가분이다. 어쩌면 당연히 있기에 그 존재의 고마움을 모를 정도로 깊은 하나의 공동체가 됐다고 봐야 한다.

현지인의 눈에는 모두가 한국인이다. 지역사회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이도 한국인이요, 낮부터 오락실에서 배팅하는 이들도 한국인이요,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이도 한국인이요, 그 쓰레기를 줍는 이도 한국인이다. 내가 배 아파하며 욕한들 그게 나와 같은 한국인이라 현지인들 눈에는 하늘 보고 침 뱉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너도 나도 외국인 처지에 몇 년 일찍 왔다고 텃세를 부린다면 현지인이 보기에 진짜 웃기지 않을까.  

그래서 더불어 사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말이 통한다고 찾아와서 고맙다며 먼저 안아주면 나중에 후회할까? 설령 후회하더라도 그렇게 살아야지 궁극적으로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만들면 그나마 나아질까? 한인회관에 잡스런 것 다 치우고 원래 목적에 맞게 우리들을 위한 모임방과 경로당을 만들어 자주자주 모이면 이런 불협화음이 누그러질까. 어쨌든 2015년의 뉴몰든은 <이 땅에서 더불어 살아가기>를 위한 모종의 실천이 필요하다.

한술 더 떠 귀하는 통일 후 한국의 모습이 지금 뉴몰든의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기가 더욱 절실한 2015년의 뉴몰든이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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