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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어느 한인 원로의 팔순연(八旬宴)에서

hherald 2015.08.26 13:55 조회 수 : 1200

 

영국 한인사회 초창기 인물로 통칭되는 원로 몇 분이 공교롭게도 올해 사이좋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팔순을 맞으셨다. 장로를 역임하셔서 교회에서 잔치를 하신 어느 원로의 팔순연에 갔다.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교회에서 팔순연을 한다는 것도 참 뜻있고 영광이겠다 싶었다. 초대된 사람, 축하하러 온 이들도 많았고 역대 한인회장과 원로들은 모두 모인듯했다. 공식적인 축하식이 교회에서 있었는데 마치 교회 행사처럼 진행돼 그날 주인공은 큰 축하를 받았다는 느낌. 멋진 콧수염으로 기억되는 주인공은 교민회장과 한인회장을 역임했던 경력을 당시 실제 모습보다 더 과장되게 자신을 포장해서(포장하는 데는 콧수염도 한몫을 했다고) 그런 지위를 누렸다며 겸손한 인사를 했다.

1970년대 중반에 영국에 온 그 원로는 30대 후반까지 소위 딴따라를 했다고 술회. 그분과 대화하면 약 250명의 한인이 일가친척처럼 살았다는 70년대 중반의 영국 한인사회로 시간 여행을 한다. 솔직한 그분의 영국에서의 삶을 들으면 들을수록 고난과 질곡의 나날을 겪고 인제야 힘들게 내린 지금의 굵은 뿌리가 짐작된다. 비단 이날 팔순연의 주인공뿐 아니라 지금 영국 한인사회의 원로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모두 오늘 영국 한인사회의 기반이 된 역사다. 말하자면 이분들이 지금 한인사회의 살아있는 역사인 셈이다. 이분들이 없으면 60년대, 70년대 영국 한인사회로 거슬러 가기가 힘들다. 당시의 추억과 역사는 점차 희미해져 가는 이분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그래서 이들이 바로 살아 있는 재영 한인들의 역사다.

인천 월미공원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년이 되던 해 첫 삽을 떴다. 그러니까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 노동자가 되어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탔던 이들이 한국이민 선구자인 셈이다. 고난 속 노동자의 삶이었지만 그 땀으로 자란 자녀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 자랑스러운 민족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어느 이민사회나 그렇듯 영국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곳에 건전하고 건강한 2세들이 자신 있는 동포요, 시민으로 성장한다.

영국의 한인사회는 역사는 있되 기록이 없다. <영국 한인이민사>는 지금 팔순연을 하는 원로들의 기억 속에만 있다. 그 기억의 가치는 크다. 영국의 한인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했는지를 직접 보고 체험한 살아있는 역사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가 이분들과 함께 사라질 기억 속의 역사라면 너무 위태로운 운명이다. 재영한인들이 뜻괴 힘을 모아 이 역사를 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역사가 소중한 우리의 자신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의 발자취를 우리가 찾아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단재 선생의 말은 뿌리의 중요성을 일깨운 말이다. <영국 한인이민사>를 정립하고 만드는 것은 <뿌리를 잊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다음 원로의 팔순연에는 <영국 한인이민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선물로 드렸으면 한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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