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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논리로 이길 수 없다면 인신을 공격하라> 로마의 수사학자 키케로의 말이다. 2,0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 여기,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모양이다.

논리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논리를 갖고 시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아예 어떤 논리조차 없었을 경우도 있다. 문제의 핵심을 모르고 있거나 엉뚱한 문제를 논거로 알고 있기 때문에 논리가 있을 수 없다. 논리가 없으니 사실이나 진실을 모른다. 사실이나 진실을 위해 논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산시키기 위해 논쟁한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이 방향을 잃고 산으로 간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 있는데 논쟁은 산으로 가버린 것이다. 

산으로 가면 논리가 없는 쪽이 좋다. 피장파장이다. 자신의 빈약한 논리가 드러나지 않아서 좋다. 상대방이 아무리 고매해도 이쯤 되면 이전투구가 될 수밖에 없으니. 자신의 빈약한 논리는, 그리고 자신의 과오는 이전투구에 섞여 보는 이들에게는 똑같은 수준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논쟁의 원인이, 논리의 농담이 모두 논리가 없는 쪽과 동일한 수준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본질을 벗어나 논쟁의 원인이 자신의 욕심이 빚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돈 때문이라는 식의 자기 수준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논리로 이길 수 없다면 인신을 공격하라'를 신봉하는 누군가가 아직도 있는 것이다.

논리로 도저히 이길 수 없어 인신을 공격한 대표적인 사례는 헬렌 켈러와 미국의 보수 신문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미국의 보수 신문들은 한때 헬렌 켈러의 업적과 영리함을 칭찬했다. 나중에 그녀가 고백하듯 '부끄러울 정도의 과분한' 칭찬을 했다. 그런데 그 신문들이 그녀가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을 알자 일제히 말을 바꿔 그녀를 비난했다. 여성의 선거권과 참정권, 비참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투쟁함으로써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한 사회주의 운동가로서의 그녀의 생각과 논리에 대해 논쟁을 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장님이고 귀머거리이기 때문에 생각에도 실수를 한다는 식의 인신공격으로 몰아붙였다. '논리로 이길 수 없다면 인신을 공격하라'의 낯부끄러운 사례다.

쇼펜하우어가 쓴 <토론의 법칙>에도 38가지 대화 방법 중 마지막에 '상대가 너무나 우월하면 인신공격을 감행하라'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인신공격을 애용하는 이유가 인신공격을 하는 데는 아무런 지적 능력이 필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같이 발끈해서 나서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식으로 상대를 옭아매는데도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더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 <지적인 능력이 비슷한 사람과 토론하고, 또한 상대의 주장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 토론하라> 아, 그랬어야 했는데.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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