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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후미에'스럽다

hherald 2012.06.11 21:58 조회 수 : 2822




조선 정벌에 실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는다. 도쿠가와는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 막부(무인정권)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실시한다. 정권이 안정되지 않은 초기에 그는 기리시탄이라 불렀던 천주교 신자를 재물로 1612년 기리시탄 금지령을 공포하고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이때 천주교 신자를 가려내는 방법으로 '후미에'라는 것이 등장한다. 후미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나 성모마리아가 새겨진 판을 말한다. 금속으로 된 것도 있고 금속판 둘레에 목재를 덧댄 것도 있다. 이 판을 바닥에 놓고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밟고 지나가게 했다. 밟고 지나가면 배교로 인정하고, 머뭇거리거나 밟지 않으면 신자로 간주해 악랄한 고문을 가하거나 죽였다. 

여기서 유래된 '후미에'는 오늘날 종교적 박해에 한정되지 않고 종교나 사상의 자유를 권력이 잔혹한 방법으로 통제하고 빼앗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또는 비민주적인 집단에서 어떤 결정사항에 몰래 반대한 사람을 색출해 내기 위한 방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후미에스럽다'라는 말도 생겼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의 발언이 바로 지극히 후미에스런 경우다. 그는 북한에 관한 질문을 해서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종북 국회의원들을 가려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옛날 천주교가 들어와 (신도를 가려내려고) 십자가를 밟고 가게 한 적이 있지 않으냐”며 “북핵 문제, 3대 세습, 주한미군 철수,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의 문제에 질문을 하면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의 역사적 상처를 헤집는 막말임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을 떠나 사람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후미에의 재판일뿐이다.

발언이 문제가 되니까 "어디까지나 종북 국회의원의 사상검증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였다"고 했다. 진보당 파문으로 너도나도 사상검증을 들고 나오니 그도 한마디 걸쳤는데 발언의 당사자가 사상검증뿐 아니라 자질검증도 필요할 지경이다. 진보당 사태는 자질검증의 차원이지만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처럼 <사람 머리를 활짝 열고서 모든 사상을 하나하나 재단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발상을 하는 사람의 사상검증이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을 가진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면 차라리 나은데 분명 잘못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상검증을 하자고 하니 덧붙일 사례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5공 핵심 인사들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퍼레이드를 참관했다고 한다. 생도들이 단상 앞에 이르러자 손뼉만 치는 참석자들과 달리 그는 생도들에게 경례로 화답했다고 한다.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국군의 수뇌부가 될 사람들이 내란수괴에게 경례"를 하는 이런 상황을 만든 이들의 사상검증은 어떻게 하나.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이들은 정작 누군데 그들이 오히려 더 설치다가 이제 후미에까지 들고 나오니 원. 정말 후미에스럽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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