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을 보내는 영국인이 많다고 한다. 물론 불면증에 시달리는 같은 사람이 여러 차례 수면제를 복용했겠지만 단지 횟수로 따지면 지난해 성인 3명 중 1명꼴로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고 하니 자고 싶어도 못 자고 전전반측(輾轉反側) 괴로운 밤을 보내는 사람이 영국 땅에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그 지긋지긋한 불면의 밤이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라니 밤이 더 지겨울 법하다. 사연이 그렇다면 잠 못 드는 영국인의 통계 속에 재영한인도 이 비율보다 더 많았으면 많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사자성어는 아니지만 네 시간 자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의 사당오락(四當五落)이란 말이 있다. 과거 입시생들이 책상머리에 붙여둔 말인데 성공하려면 적게 자야 한다는 뜻으로 굳어져 마치 격언처럼 신분이 상승한 사이비 사자성어다. 요즘에는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분위기여서 잠을 적게 자는 것이 성실함의 척도처럼 됐다. 그래서인지 한국 직장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5시간으로 평균 7.75시간을 자는 미국인보다 1시간 이상 덜 잔다. 한국인이 전 세계에서 잠을 가장 적게 자는 민족일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국에 있는 한인 한의사에게 물어보니 하루 평균 적정 수면시간은 7~8시간이며, 잠을 적게 자고 얻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크다고 한다. 낮에 활동하는 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오래 잔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잠을 자는 것이 보약 못지않다고 했다. 특히 남성보다 수면장애를 더 심하게 겪는 여성에게 있어 잘 자는 것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했다.
맞다. 잠은 충전과 재생이다. 그리스 신화를 봐도 잠의 신 휩노스는 한편으로 휴식의 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잠을 적게 자야 성실하다는 인식 때문에 피곤하고, 앞으로 살 걱정 때문에 잠이 안 와 피곤한 오늘이다.
잠 못 드는 이유는 많다. 외국 언론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니 부부싸움을 하고 화가 안 풀려서, 아기가 안 자서, 배우자 코를 골아서, 낮잠을 많이 자서, 커피를 마셔서, 밤 늦게 과식을 해서 등이 나왔다. 물론 갖가지 걱정 때문이라는 응답도 있었지만 '먹고 살 걱정에 앞날이 캄캄해서'라는 분위기의 응답은 드물었다. 그런데 이제는 경제가 잠을 앗아가는 시대다.
살면서 걱정 없는 날이 있을까마는 경제 때문에, 경기 탓에, 먹고 살 내일이 걱정이라 수면제에 의존해야 하는 영국의 불면의 밤. 영국에 사는 한인들의 가정과 업체에 불면의 밤을 드리우는 이 모든 어려움이 후딱 걷혔으면 좋겠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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