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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고사리 사랑

hherald 2012.04.30 19:25 조회 수 : 3695




영국의 봄을 유독 기다린 한인들이 많을 것이다. 써머타임으로 낮이 길어지고 파릇파릇 잔디에 물이 오르는 영국의 봄. 그중에서도 봄이 절정에 달하는 사월 말부터 오월 중순까지의 봄을 손꼽아 기다린 분들이 많을 것이다. 왜냐. 골프 치기에 좋은 계절? 지긋지긋한 긴 겨울밤을 벗어난 기쁨? 아니다. 바로 고사리 때문이다. 고사리가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맘때가 되면 영국의 동포사회에는 고사리 따는 재미로 사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은 영국 고사리가 부드럽고 더 맛있다고 극찬한다. 고사리의 새순이 나와 고사리잎이 펴지지 않고 동그랗게 말려 있는 그 모습을 보면 절로 환호가 나온다고 한다. 이 계절에 영국에는 고사리가 지천인데 그것을 따는 것은 별 어렵지 않으나 -물어보니 내공이 쌓인 실력자는 한 시간만 따면 쓰레기봉투 2개를 채운다고- 영국 날씨는 해가 길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오락가락 하기 때문에 그걸 삶고 말리는 과정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데 고사리에 반한 이들은 그 과정도 재미있다고 한다.

고사리 애호가는 영국의 한인사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자연환경이 되는 재외 모든 한인사회에는 있는 모양이다. 고사리를 따러 가는 것을 단체의 단합대회로 할 정도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긴다. 야생에서 자라는 고사리의 주인은 없지만 야생 동식물을 마음대로 채취하는 것은 어느 곳이나 법으로 금하고 있어 고사리를 따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흔히 고사리는 사슴이나 노루의 먹이라고 하는데 고사리를 따는 모습이 동물의 먹이를 망치는 행위로 보여 신고정신이 투철한 현지인의 눈에 걸려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에서는 그게 유독 심했던지 밴쿠버 인근의 어느 숲에 '고사리 채취 시 벌금 2,000불'이라는 한국어 경고문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한인이 없겠지만 리치먼드 공원에서 고사리를 따다가 망신을 당한 얘기가 간혹 흘러나왔다. 난처한 순간을 빠져나온 변명도 얘깃거리였다. 자녀의 학교 과제물로 낸다거나, 약으로 쓴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쓰레기봉투에 2자루씩 담아놓고 이런 거짓말로 변명했다니 참 궁색하고 창피하다.

한인 동포들이 애용하는 사이트에 간혹 고사리를 판다는 광고가 올라온다. 얼마나 채취했기에 광고해서 팔 정도인지. 이렇게 고사리를 작살내는 수준의 채집이 문제라는 것이다. 영국도 사람 사는 동네인 만큼 고사리 몇 줌 꺾어서 저녁 반찬으로 올리는 작은 재미조차 냉혹하게 비난할 수 없지만 마치 기업형으로 고사리를 채취하는 것은 그런 작은 재미조차 누릴 수 없도록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고 얼굴을 깎아 내릴 수 있다. 고사리 따러 가서 적당히 따고 두고온 고사리가 눈에 아른거릴 정도로 고사리를 사랑하면 문제가 된다. 고사리에 대한 사랑이 봄이 되면 어김 없이 도져 그냥 두고 못 보는 병이 되면 문제다. 

과유불급이라고 고사리에 대한 사랑도 지나치면 문제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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