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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타이타닉과 신사도(紳士道)

hherald 2012.04.16 20:04 조회 수 : 3870



20세게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꼭 100년이 됐다. 비극을 추모하는 기념식이 세계 곳곳에서 열렸는데 기념식마다 배가 침몰하던 공포의 그 밤에 영웅적으로 행동한 영국의 신사도 얘기를 유독 많이 재현하고 있다. 타이타닉의 여성 승객은 73%가 살았다. 남성 승객은 20% 정도만 살았다. 여성, 어린이, 노약자를 먼저 살리겠다는 신사도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생존 비율이다.

“나도 한때는 영국 신사였지만, 지금의 영국인들은 신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일랜드의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 이미 영국의 신사도가 많이 변색했다고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오스카 와일드는 1900에 죽었다. 타이타닉은 1912년에 침몰했다. 만일 그가 타이타닉 얘기를 들었다면 이 말이 많이 바뀌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살린 타이타닉의 기사도는 타이타닉보다 60년 전에 침몰한 영국 해군 함정 버킨헤드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5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근해에서 침몰한 버킨헤드호는 643명의 승객 중 193명이 살았는데 여성과 어린이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당시 함정 사령관 시튼 중령은 병사들에게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도록 명령해 기사도의 표본으로 남았다.

그런데 침몰하는 배에서 보인 멋진 신사도는 이 두 번의 사례가 유이한 것이어서 씁쓸하다. 특히 타이타닉호나 버킨헤드호의 남자 승객이 신사도를 발휘했다기보다는 선장의 명령이 여성과 노약자를 살리는 기사도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죽음을 앞둔 순간에 빛을 발한 낭만적 비극의 신사도가 어째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타이타닉 이후 여성 승객이 남성보다 많이 생존한 선박 침몰 사고가 없으며 모든 선박 사고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은 어린이가 차지한다니 신사도는 사라졌다고 봐야하나. 더 놀라운 것은 선박 사고에서 평균적으로 생존율이 가장 높은 이는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이라니 신사도는 버킨헤드호의 시튼과 타이타닉의 스미스를 끝으로 바다에 묻힌 것이다. 연구진은 18건의 선박 사고를 조사했는데 영국 배에 탄 여성들의 사망률이 다른 국적 선박보다 높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영국의 신사도라는 말이 무색하다.

물론 오늘날에 신사도라는 말은 여성을 남성보다 미숙하고 연약한 존재로 간주해 여성 보호책임을 남성에게 강요하면서 남성의 위상을 높이는 성별 이원체계의 이념적 무기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신사의 사전적 의미가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를 가리키는 만큼 신사가 많아서 그리 나쁠 건 없다.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신사라고 자처하는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자신들의 책무이자 덕목으로 여겼던가 보다. 웰링턴은 “신사를 알아보는 방법은 아랫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고용주는 직원을, 스승은 제자를, 장교는 부하를, 즉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래야 진짜 신사요, 이런 신사가 많아야 제대로 된 세상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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