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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김연아가 금메달을 딴 그날, 온 국민이 기뻐하던 그 순간, 하필 그날 그 순간에 이 정권은 MBC 신임 사장을 내정했다. 9명으로 구성된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회는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방문진의 독단과 독선에 반대해 기권한 3명을 제외한 6면의 소위 '거수기'들이 모여 신임 사장 투표를 했다. 그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김재철 청주MBC 사장을 선출했다. 그는 울산문화방송 사장 시절인 2007년 모친상을 당했을 때 대선 준비로 바쁜 이 대통령이 직접 조문을 할 정도로 오랜 교분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MBC 내에서는 이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인물로 평가받기 때문에 향후 방송의 내용도 정권의 의도를 충실히 따르는 쪽으로 바꾸려 무척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MBC 노조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이 정권은 언제 이런 거사를 은근슬쩍 처리할까 노리다가 국민의 관심이 김연아에게 쏠려 있는 그날 아침부터 부랴부랴 처리했다.

 

시청률 조사기관에 따르면 김연아 선수가 출전한 이날 피겨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 경기를 중계한 SBS TV 점유율은 69.1%를 기록했다. 만약 TV를 켰다면 열 대 중 일곱 대가 SBS에 채널을 맞췄다는 것이다. 엄청나다. 얼마나 숨죽이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이 정권은 기쁜 소식에 목마른 국민의 관심이 김연아에게 쏠릴 때 김연아 뒤에 숨어서 MBC까지 장악하는 '방송장악 완결편'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우울한 소식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그래서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어서 가능하면 적은 사람이 알게 하려고 이날을 택한 것일까. 하긴, 이런 농담을 하려니 내 손발이 먼저 오그라든다.

 

영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국 TV를 볼 기회가 적어 못 느낄 수 있으나 대통령특보 출신의 김인규 사장이 KBS에 앉은 이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KBS 교양 오락프로그램에 심심찮게 나온다. 방송의 공정성 운운할 것도 없이 정치적으로 아예 편향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김재철 사장이 MBC에 앉으면 이 대통령과 코드가 맞지 않는 보도 시사 프로그램은 당연히 손을 볼 것이다. 정권 홍보방송을 충실히 따르는 여당의 놀이터가 된 MBC를 국민은 바보상자를 통해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필 이런 소식은 김연아 뒤에 숨어서 저질러야 두리뭉실 넘어갈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도대체 김연아 뒤에 숨어 무슨 짓을 한 거야. 얼마 전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참 궁색하게도 김연아의 인기에 이명박 정부의 2년 성과를 얹어 가려는 궁상을 떨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2년 성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국민적 자신감을 되찾은 일>이라며 <동계올림픽에서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했다. 누군가가 한국을 칭찬하면 그것이 곧 해외언론도 이명박 정부를 칭찬하고 있다는 식의 해석을 하는 나팔수 언론보다 더 한 청와대 홍보수석의 궁상이다.

 

김연아를 비롯한 젊은 한국 선수들의 선전과 영광을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선 지난 2년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부자나라가 됐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정권 홍보를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김연아를 비롯한 젊은 한국 선수들의 선전과 영광을 언론장악의 기회로 악용하는 이들.

 

도대체 김연아 뒤에 숨어 무슨 짓을 한 거야. 소설가 이외수 씨가 그들에게 물었다. <스스로 비열하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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