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 부장이던 김재규가 박선호, 박흥주 등과 당시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사건이다. 34년 전의 일이다. 당시 지방 행사에 참석하고 서울로 올라온 박정희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에서 경호실장 차지철, 비서실장 김계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함께 가수 심수봉, 한양대생 신재순을 도우미로 불러 연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김재규의 총에 저격당해 육군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대통령을 죽였다고 주장했으나, 권력간 암투에서 경호실장 차지철에 밀리자 충동적으로 일으킨 범행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따라서 10·26 사건은 박정희 정권 1인독재체제의 정치적 허점을 보여준다 하겠다.
10·26 사건으로 유신독재는 끝났다. 그리고 10·26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날이 됐다. 제아무리 미화를 한다 해도 유신은 헌정질서를 유린한 독재였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한 올해 10·26은 과거와 사뭇 다른 기념식이 줄을 잇고, 그런 기념식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유신의 망령을 되살리는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추도식에서 <서민들은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 차라리 유신 시대가 더 좋았다고 부르짖는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묘소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아직도 5·16과 유신을 폄훼하는 소리에 각하(박정희 전 대통령)의 심기가 조금은 불편할 것으로 생각하나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며 <당신께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을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반드시 건설하겠다. 미거한 후손들이 신명을 걸고 맹세한다>고 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의 초대 이사장은 지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들어간 김기춘 씨다. 손병두 씨는 2대 이사장이다.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 주관으로 열린 추도식에 참석한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추도사에서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했다.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는 극존 호칭은 좀 섬뜩하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북한의 ‘어버이 수령’ 호칭과 닮았다"고 비판했다. 사실 심 의원은 공직선거법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아 대법원 상고심을 기다리고 있다. 풍전등화인 그의 처지가 그래서인지 뭔가 조급한 그의 심정이 묻어나는 추도사였다.
34주기 추모예배에서 어느 원로목사는 <한국은 독재를 해야 해>라는 안 했으면 좋을 말을 했다. 김영진 원로목사는 '제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에서 <가끔가다가 독재니 어쩌니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한국은 독재를 해야 돼. 정말이야 독재해야 돼>라며 <하나님이 독재하셨어. 하나님이. 무조건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셨어>라고 말했다. 34년이 지나 이제 처음 추모예배를 하는 의도도 그렇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과 '한국은 독재를 해야' 하는 것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내 짧은 견해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10·26 추도식에서 나온 일부의 과잉충성으로 그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과 행동에서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쳐도 '유신회귀'는 절대 없어야 한다. 유신은 분명 아버지의 과오였고 민주주의의 퇴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는 것도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유신의 망령을 되살리는 자들의 과잉충성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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