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추석에 쓴 글이다.
<추석秋夕이다. 교복을 입고 다니던 학창시절에 추석이 연휴였던 기억이 없다. 추석 전날에 학교를 갔고 추석날 하루만 쉬고 다음 날 다시 등교했다. 추석 다음 날이 휴일로 된 건 1986년, 추석 전날까지 휴일이 돼 3일 연휴가 된 것이 1989년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린 시절에 간혹 일요일과 붙은 추석은 제법 길게 노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올해는 추석 연휴 중 9월 23일이 일요일이라 연휴 뒤 9월 26일 수요일이 대체 공휴일이 된다.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5일 연휴다. 나랑 연휴랑 관계없지만 그래도 와우.
추석에는 송편을 먹는다. 설에 떡국, 추석에 송편. 이만큼 반드시 특정한 날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짝지어진 경우가 있으랴. 언제 어디를 가나 뭘 먹을까 결정장애가 있는 이들도 추석에는 송편을 먹는다. 옛 문헌에는 송편이 꼭 추석에 먹는 떡이 아니었다는데 지금은 '추석에는 송편'으로 굳어졌다. 추석에 먹기는 하나 예전처럼 솔잎을 깔고 쪄 솔잎 향이 나는 송편은 요즘 드물다. 송편은 송병松餠이라고도 불리듯 솔향이 배인 떡이어야 제맛인데 말이다. 미각으로 맛을 보듯 후각으로도 맛을 보아야 제맛이라는 말이다.
추석을 외국인에게 설명할 때 아마 열에 아홉은 Thanksgiving Day라고 한다. 그만큼 빨리 이해시킬 말이 있을까. 같은 듯 다른 게 열 가지도 넘는데 추석을 북미의 추수감사절과 연계해 설명하곤 한다.
같은 걸 억지로 하나 꼽는다면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도 반드시 먹는 음식이 있다는 거다. 칠면조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을 Thanksgiving Day 대신 Turkey Day라고도 부른다니 이런. 자연이 준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뭘 먹는지 기억하는 날이라니. 이쯤 되면 이런 미국 애들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말을 가르쳐야 한다. 우린 추석을 '송편절'이라고 하지 않는다.
칠면조는 천천히 오래 구워야 한다는데 성미 급한 이들이 칠면조를 드럼통에 넣고 기름을 끼얹어 불을 붙이다 화재가 종종 난다고 한다. 미국 추수감사절 기간 가정집 화재는 칠면조를 요리하다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게 굽는다손 급하게 구운 칠면조가 제맛이 날까. 송편 빨리 쪄내려 솔잎을 빼먹는 것처럼 칠면조도 벼락치기로 구워나오면 진정한 맛은 빠질텐데 말이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 추수감사절은 11월의 넷째 주. 날짜도 멀다. 조상이든 자연이든 감사를 드린다는 게 같다지만 시기로 볼 때 추석은 수확하는 중간에 감사 인사를 하는데 추수감사절은 11월 느지막히 일단 수확을 다 해보고 감사 인사를 한다는 거다. 좀 억지스러운가.
미국인도 추수감사절이 오면 돈 걱정으로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다음날이 대규모 세일을 하는 블랙 프라이데이) 명절 나기 부담스런 사람들 심정이 비슷한데 내 견해로 둘이 똑 같은 점은 '소원을 빈다'는 거다.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뼈를 부러뜨리며 소원을 비는 위시본Wishbone처럼 우리는 추석 달맞이를 하며 소원을 빈다. 소원을 비는 동안은 누구나 착하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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