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버에서 프랑스로 갈 때 가장 가까운 곳이 '칼레'다. 칼레의 시민은 말 그대로 칼레시에 사는 사람들이다. 잘 아시다시피 로댕의 조각으로 유명한 6인의 군상 群像 칼레의 시민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칼레에서 영국군에 저항하던 시민들이다. 악조건에서도 1년 동안 버티고 싸우다 항복했는데 잉글랜드의 왕이 악에 받쳐 시민들을 다 죽이려 하자 칼레에서 빌고 왕 주위에서도 말려 칼레 시민 중 6명만 처형하고 나머지는 다 살려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럼 누가 6인이 될 것인가. 선뜻 죽겠다고 나선 이가 고위 관료, 부자 등 상류층 인물들이었다. 6명이 스스로 죽겠다고 나섰는데 마침 임신 중인 잉글랜드의 왕비가 이들을 죽이면 태아에 좋지 않을 일이 생길까 해서 말린다. 그래서 칼레의 모든 시민은 산다는 얘기다.
6명이 스스로 희생하겠다고 나서고 왕비가 말리고 그래서 극적으로 다시 살고 하는 요소는 후대에 MSG를 친 정황이 짙다. 일화를 애국적 미담으로 극화한 것인데 이를 갖고 로댕이 10년에 걸쳐 작업해 '칼레의 시민'이란 작품을 만들었다. 전 세계에 칼레의 시민 군상은 12개가 있다. 1개만 진짜고 나머지는 모조품인 게 아니라 12개 모두 진품이다. 로댕의 조각은 주물 틀을 만들어 조각하고 틀에 청동을 부어 완성하니까 얼마든지 다시 생산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수십 개가 세계 도처에 앉아 생각하고 있다. '칼레의 시민'은 12개까지를 진품으로 한다는데 그래서 칼레의 시민은 12개가 있다.
가장 먼저 주조한 것은 프랑스 칼레 시청 광장에 있다. 미국에는 워싱턴, 로스엔젤레스, 필라델피아 등 3개가 있다.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 있고 우리나라에도 서울 로댕겔러리에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것은 삼성 집안에 있어 일반인이 보기 어렵다. 그래서 일본의 어느 자산가가 이 군상을 구입해 일반인에게 공개한 것을 두고 한국 삼성가에서도 일반인이 볼 수 있게 좀 하라고 말들 한다.
영국에도 있다. 웨스트민스트 국회의사당 옆 뜰에 있다. 영국은 프랑스와 100년 전쟁을 한 나라다. 그런데 프랑스의 미담을 자국의 국회 앞마당에 세워둔다고? 적이라도 훌륭하다, 이렇게 평가하는 영국의 대인배 기질이란 말인가.
칼레의 시민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라고 한다.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 영국 국회의사당에 세워 영국 국회의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일깨우는 것일까.
로댕은 '칼레의 시민'을 반드시 평지(높은 단상이 아닌)에 세우라고 했다. 그래서 세계 도처의 조각상들이 모두 평지에 서 있다. 평등한 위치에서 보고 누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도리를 다하라는 뜻일 게다.
영국한인사를 준비하면서 알게됐는데 초기 영국 한인사회에는 칼레의 시민과 같은 분들이 있었다. 평지에 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도리를 다한 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요즘 시절에 그분들이 유독 그립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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