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사가 있는 결혼식을 한 사람이라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란 말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머리색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라는 뜻인데 세상에 하얀 색을 가진 하고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파 뿌리일까, 생각한 적 있는데 파는 중국이 원산지로 통일신라 시대에 들어왔으니 우리에게 매우 친숙해서 비유되지 않았을까, 또 파의 뛰어난 생명력에 비유해 오래 살더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여튼 이처럼 늙도록 함께 살라는 말은 결혼이란 '평생의 약속'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에 빌 게이츠 부부의 이혼을 계기로 미국에서 황혼 이혼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미국의 이혼율은 대체로 감소했는데 50세 이상의 황혼 이혼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즈음에 헤어지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말이다. 미국만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우리는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부부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와 부인 멀린다가 27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혼을 결정했다고 밝히면서 한 말이다.
빌 게이츠 부부처럼 1946년~64년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 부머 세대라고 한다. 그들은 1970년대에 성인이 됐다. 그 시대에는 이혼 가정이 많아 이혼 혁명 시대라고 한다. 이혼이 금기시되던 전 세대와는 달리 부부가 안 맞으면 거리낌 없이 이혼했고 재혼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도 많았다.
미국의 베이비 부머 baby boomer는 2차 대전 후 태어난 세대인 1946~64년 출생자를 말하고 한국의 베이비 부머는 6·25전쟁이 끝난 뒤 태어난 세대, 1955~63년 사이를 말한다. '황혼 이혼'은 50대 이상의 이혼을 말하는데 더 연로한 노부부의 이혼도 있지만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베이비 부머 세대의 이혼이다.
코로나19로 결혼도, 이혼도 줄었다. 그런데 황혼 이혼은 오히려 늘었다. 코로나에도 역주행하는 것이 황혼 이혼이다. 이혼한 부부 3쌍 중 1쌍이 검은 머리 파 뿌리 다 돼가는 부부다. 30년 넘게 살다가 헤어진 부부도 전체 이혼 중 15%가 넘는다. 모든 것이 줄어드는데 황혼 이혼은 나 홀로 증가했다.
이렇게 말하는 학자도 있다. 결혼이란 제도가 인간의 평균수명이 3, 40년에 불과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유물이라서 한 번 결혼하면 평생 사는 것이 지킬 만 했다. 그런데 인구 구조가 고령화됐고 기대 수명이 늘어난 것이 황혼 이혼이 많아진 이유가 됐다. 사람이 3, 40년 산다면 결혼해서 애 낳고 얼마 살다 보면 죽으니 '결혼은 평생의 약속'이란 것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라고 하니 이건 말이 달라진다, 에고 조금만 더 참으면 다 끝나겠지, 누군가 가겠지, 했는데 아직도 3, 40년이 더 남았다고? 그건 못 참지.
평균수명이 120살이 될 거라는 2070년에는 평범한 사람도 결혼을 2-3번 할 거로 예상돼 결혼 패턴과 가족제도가 지금과는 매우 다를 걸로 예상하고 있다.
해가 져 어스름해지는 때, 황혼 黃昏. 끝 무렵을 나타내는 멋진 말이다. 특히 '인생의 황혼기'라는 표현은 마무리를 멋지게 혹은 아름답게 맺은 이를 표현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다.
황혼 이혼은 글쎄.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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