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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정세균 국무총리가 민생현장 방문에서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 어려움을 겪는 상인에게 "요새는 손님들이 적으시니까 편하시겠네"라고 농담했다고 야당에서는 민생탐방에 나선 총리가 오히려 상인들 염장을 질렀다고 비난했다. 총리의 말만 놓고 보면 힘든 상인을 조롱하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인 상인은 정 총리의 실언이라는 보도 자체가 말의 일부분만 떼어 옮겨 상황과 속뜻을 왜곡했다고 설명했다. 장사가 안된다고 한 사람은 업주였고 손님이 적어 편하겠다고 한 대상은 종업원이었다. 정 총리는 정치권에 오기 전 회사원이었는데 마침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종업원을 만나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지금은 손님이 없으니 편하게 일하시고 손님이 많아지면 그때 사장을 도와 열심히 일하시라' 격려했고 이 말을 들은 업주나 종업원 모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는데 <손님 없어 편하겠다>는 말만 똑 떼어 현실을 모르고 감수성 없는 몰지각한 언행을 한 총리로 만들었다.

 

단장취의 斷章取義, 글이 가진 뜻이나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글이나 말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마음대로 잘라 자기에게 필요한 뜻이나 의미를 취한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로는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고 했다. 그는 이 말을 자주 했다는데 특히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데살로니가후서에 이 말이 들어 있는 배경을 보면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일부 테살로니카의 신자들을 비판하며 묵묵히 일할 것을 권하며 쓴 격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격언이 공산주의자에게는 일하지 않고 불로소득으로 사는 자본가를 비판하는 논리로 이용됐다. 마찬가지로 자본가에게는 일하지 않고 파업이나 하면서 임금을 올려달라는 노동자의 파업 권리를 부정하는 데 인용됐다. 사도 바울로의 원뜻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이현령비현령 耳懸鈴 鼻懸鈴이 됐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는 케네디의 취임 연설문이다. 자유주의자였던 케네디는 국가가 무엇을 하는지 소극적으로 있지 말고 개인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라는 미국인의 정치참여를 독려한 말인데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이 말이 '국가가 하는 일에 국민은 군말 없이 무조건 따르라'는 뜻으로 풀이됐다.

 

학교 폭력을 예방하려 학교에 경찰관을 두는 스쿨폴리스 제도하에 여학교에 배치된 남자 경찰관과 여학생이 성관계를 맺어 문제가 됐을 때 표창원 의원이 스쿨폴리스 제도 운용의 문제점을 <여학교에 잘생긴 남자 경찰관을 보내 이런 일을 초래했다> 말했다고 언론에 나왔다. 그러자 야당 여성의원들은 '여성을 외모지상주의자로 깎아내리는 주장'이라고 맹비난했다. 표 의원의 원래 발언 취지는 <스쿨폴리스 제도가 홍보실적에 치우쳐져 있다.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의 선발기준이 인지도와 호감도이기 때문에 여학교에는 잘생긴 경찰관, 남학교에는 예쁜 경찰관을 곧잘 배치한다. 잘못된 제도 운용이 낳은 사고>였다고 한다. 홍보에 치우쳐 범죄 예방보다는 학생들의 호감을 의식한 경찰관 배정이 이런 부작용을 낳았다는 뜻의 얘기가 여성을 용모지상주의자로 폄하하는 말로 들리게 했다. 

 

말이나 글은 한 부분만 떼어 놓으면 이렇듯 뜻이 달라지고 의미가 왜곡되기 쉽다. 정 총리도 이젠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농담해야 한다는 힘든 자릿값을 느꼈을 것으로 본다. 코로나19가 농담에도 날카로워지는 민심을 만들기도 했지만...

 

 

헤럴드 김 종백단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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