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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아교 阿膠'라고 하면 '공업용 풀'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아교는 풀의 일종이다. 동물의 가죽 등을 끓여서 접착 성분을 추출한 것으로 지금도 책을 제본할 때 사용한다. 소, 말, 돼지 등 동물의 가죽과 힘줄 등으로 만들어서인지 일제 강점기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독립투사들이 배고파 공업용 아교를 구워 먹기도 했다는 슬픈 역사의 아픔도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아교는 또 다른 특별한 용도가 있다. 소, 돼지가 아닌 유독 당나귀 가죽으로 만든 아교는 부족한 음기를 보충해 주는 보음제 補陰劑로 사용하는데 역사가 무려 2천 년이 넘는다고. 전문가의 손길로 오랜 시간 정성스레 만들어진 당나귀 아교는 꽤 비싼 약재다. 동물 가죽이니까 콜라겐 성분일 테고 보음제라서 피부에 촉촉하고 풍부한 영양을 공급해주니 예뻐야 살 수 있었던 양귀비 같은 중국 미녀들이 가까이했다고 한다.

 

문제는 중국인이 당나귀 아교를 많이 찾는 만큼 중국에는 당나귀가 없다는 데 있다. 수요를 맞추려면 한 해 480만 마리가 필요하다는데 중국 당나귀는 1990년  1천 100만 마리가 있었지만 1997년에만 해도 300만 마리로 줄었다. 1992년과 현재를 비교하면 76%나 감소했다니 씨가 마를 지경이 됐다. 중국만 문제가 아니라 당나귀 개체 수 감소는 남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적 추세다. 다 아교를 만들려고 중국에서 가죽을 벗겨갔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부족한 당나귀 가죽을 아프리카산 당나귀로 메우자 아프리카 국가들은 2년 전부터 중국에 당나귀 수출을 금지하는 조처를 했다. 그런데 조처가 먹힐 동네가 아닌지라 당나귀 가죽이 비싸게 거래된다고 하니 무분별한 도살이 아프리카 도처에서 벌어졌다. 당나귀를 훔쳐 파는 암거래가 횡행했다. 아프리카에서 당나귀는 중요한 생활 수단인데 하루아침에 당나귀가 없어져 직업과 수입원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없어진 당나귀가 주변에서 발견되는데 가죽만 벗겨져 죽어있는 것이다. 가격이 뛰니 당장 당나귀를 죽여 팔지만, 이는 오히려 아프리카 국민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가죽만 필요하니 도살할 당나귀를 제대로 다룰 리도 없다. 끌려가다 다치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쉽게 가죽을 벗기려 굶기기도 한다. 중국인의 보신을 위해 세계 당나귀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더욱이 당나귀 아교는 중국에서도 보건 식품으로 정식 인정받지 못했는데 상상 이상의 가격으로 중국의 약국에서 판매된다. 그러니 당나귀 가죽이 계속 필요하다. 문제가 크기는 하다.

 

양의학에서는 아교를 그저 콜라겐으로 보지만 중국인에게는 아름다움과 건강을 지키는 2천 년의 비법이 깃든 보약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아교를 만드는 것이 큰돈이 된다는 업계의 믿음이다. 업자들은 금보다 좋은 사업이 아교라고 믿고 있다. 영국의 동물보호단체 '당나귀 보호소 Donkey Sanctuary'에서는 중국의 아교 업계에 인공 콜라겐 등 대안을 찾아서 당나귀 개체수 감소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글쎄, 일단 중국인은 당나귀 아교를 그저 단순한 콜라겐으로 보지 않는데다가 중국인 업자는 아교가 금보다 투자가치가 더 좋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해결될 문제인가. 이 순간에도 당나귀만 죽어 자빠진다. 

 

헤럴드 김 종백단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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