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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현대적으로 재건할 것인가? 중세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할 것인가? 화재로 무너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을 어떻게 복원할지를 두고 프랑스가 분열하고 있다. 성당 재건축에는 복원사업 책임자가 있고 건축 책임자가 또 따로 있는 모양인데 이 두 사람이 우선 치열하게 싸운다. '입 닥쳐라'는 막말 수준이다. 

 

복원사업 책임자는 첨탑 부분이 꼭 옛날 그대로 복원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인데 이는 마크롱 대통령의 의견이기도 하다. 마크롱은 불 난 직후 "노트르담을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지을 것"이라 말했는데 이에 따라 <우리 시대의 능력과 기술에 맞게 설계>하겠다며 - 예를 들어 첨탑 부분의 소재를 화재에 취약한 참나무가 아니라 티타늄 등 현대적 소재로 하는 것 - 현대적으로 재건하려 한다. 그러니까 현대적 재건은 프랑스 여당의 뜻이며 진보 진영의 뜻이라고 할까. 

 

건축 책임자는 중세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파정당인 공화당이 이 주장에 동의하는데 특히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이 <첨탑 부분을 티타늄 등 신소재로 복원하는 것은 프랑스 문화유산에 대한 모독>, <노트르담 성당에 손을 대지 말라>며 유독 열을 올린다. 옛 그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 야당, 보수 진영 뜻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논쟁의 본질은 원형을 복원해 정통성을 지키느냐보다 실용적이고 오래 보존 가능한 쪽으로 보존하느냐의 문제인데 강철이나 강화유리 같은 현대적 자재를 사용할 것인지 아닌지의 논쟁으로 협소해져서 참나무냐 강철이냐 싸우게 됐다. 혹시 나중에는 내가 주장하는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저쪽이 주장하는 건 반대라는 논쟁이 될지도. 노트르담 성당 첨탑에 진보냐 보수냐가 대롱대롱 달린 느낌이다.

프랑스 국민은 유산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원형 그대로의 복원이 힘을 얻을 것이라고 점쳐진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54% 시민이 노트르담을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짓길 바란다고 답했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가면 이번에 무너져내린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도 원형이 아닌 보수 공사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2세기 시작해 200년이 걸려 완성했다. 이때 높이 96m의 첨탑은 없었다. 1859년 성당의 보수 공사를 맡았던 건축가가 새로 추가한 것이다. 당시로는 파격적이며 건축가의 철학이 깃든 이 첨탑이 완공됐을 때 파리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 사이에도 "별 볼 일 없다"는 혹독한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문화재 보수나 설치와 관련해 정치권이 싸운 일이 많다. 1980년대 루브르 박물관을 현대화할 때 피라미드를 닮은 유리 구조물 건설을 두고 정치권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었다. 지금은 걸작이라 평가되지만, 당시 프랑스인 90%가 반대했다. 그 전에 에펠탑은 또 어땠나. 1887년 착공 당시 ‘예술 도시인 파리의 아름다움을 망치는 흉물’ 소리를 들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복원이 정통 수호와 현대적 재건의 두 목소리에 쌓여 있는 뒷면에 또 다른 걸림돌이 추측된다. 바로 복원 기간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불이 나자 5년 내에 복원하겠다고 했는데 전문가들은 길게 40년 짧게 20년으로 본다. 2024년 파리 올림픽 전에 복원을 마치려는 정치인들의 욕심이 세계인의 유산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제대로 된 복원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물론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헤럴드 김 종백단상.JPG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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