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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170년 전 아일랜드 어린이들의 죽음

hherald 2019.06.17 16:09 조회 수 : 4185


2011년 캐나다 퀘벡주 어느 해안가에서 어린이들의 뼈가 발견된다. 두개골, 치아, 작은 팔다리 뼈 등이 나왔는데 오랜 세월 묻혀있다가 폭풍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어린이들의 뼈가 발견된 인근에서 2016년 18구의 시신이 발견된다. 물론 오래된 시신이었다. 몬트리올대학은 8년의 연구 끝에 뼈의 주인공이 170여 년 전 대기근을 피해 캐나다로 오다 폭풍에 난파된 아일랜드 이주민 어린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시신도 모두 아일랜드 이주민이었다. 이들은 1847년 아일랜드 슬리고에서 캐나다 퀘벡으로 향해 출발한 '더 캐릭스 오브 화이트헤븐'호에 타고 있었다. 배는 퀘벡 인근에서 폭풍으로 난파돼 200명 중 48명만 살았다. 폭풍으로 난파돼 죽은 이의 뼈가 깊이 묻혀 있다가 170년 뒤 폭풍으로 세상에 드러나고 이제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아이들의 뼈에선 비타민 D 결핍으로 발생하는 구루병 증상도 보였다고 한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1845년부터 7년 동안 이어졌다. 대기근의 원인은 주식으로 재배하던 감자에 마름병이 번져 모두 죽어버리니 먹을 것이 없었다는 건데 자연재해를 떠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영국, 잉글랜드에 있었다. 잉글랜드는 이일랜드인들의 토지를 몰수해 이주한 잉글랜드인이나 성공회로 개종한 아일랜드인에게 나눠줬다. 소작농으로 전락한 아일랜드인은 오로지 먹기 위해 값싼 감자를 대량 재배했다. 주식인 감자 농사를 망쳤으니 먹을 것이 없어서 백만 명이 죽은 것이다. 감자가 없으면 다른 걸 먹지 하겠지만 영국이 아일랜드의 모든 걸 착취해가니 가난한 아일랜드의 소작농들은 일 년 내내 감자만 먹고 버티며 살았다. 감자라도 계속 먹으면 살겠는데 밀과 가축은 영국에서 가져가고 감자는 말라죽었다. 대기근 전 아일랜드 인구가 800만 명이었는데 대기근이 끝나자 600만 명으로 줄었다. 100만 명은 굶어 죽었고 100만 명은 굶어 죽지 않으려고 이민길에 올랐다. 이번에 뼈로 돌아온 아이들처럼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죽은 이도 많다.

더블린 항구에 <기근 Famine>이라는 청동 작품이 있다. 뼈만 남은 사람들, 뼈만 남은 개, 죽은 아이를 맨 뼈만 남은 사내의 모습이 항구에 서 있다. 그 더블린 항구에서 지옥 같은 땅을 떠나려 배를 탔고 배 안에서도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었다. 오로지 살기 위해 뭐든 먹었다. 유럽인은 먹지 않는 해초류까지 먹었다. 아이리쉬 모스 Irish Moss 라는 해초류를 해변 바위에서 뜯어와 수프로 만들어 먹으며 배고픔을 견뎠다고 한다. 아일랜드 수호성인 이름을 딴 '세인트 패트릭 수프'라는 말도 이때 생겼다고 한다.

 

대기근의 배경에는 종교적 갈등이 큰데 굶는 아일랜드인들을 위한 종교적 자비도 없었다. 아일랜드 영화 <블랙 47>을 보면 당시 빈민 구제를 한답시고 영국에서 들어간 종교단체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대기근 시기 아일랜드에는 순수한 자선, 순수한 구제가 없었다. 먹을 것을 줄테니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성공회 혹은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강요하는 종교인이 득실거렸다. 영화는 수프 한 그릇에 신앙을 포기하는 이들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의 굶주림과 고통에 관심 없는 영국인도 잘 보여준다.

 

당시 9살에서 12살 정도로 추정된다는 뼈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170년 전 아일랜드 어린이들의 죽음으로 아름다운 섬나라가 다시 슬프게 다가오는 오늘, 명복을 빈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단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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