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치솟는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초소형 캡슐 주택 건설을 두고 허가를 내줄 수 없다, 그럼 거리에 나앉으라는 거냐, 공방이 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의 평균 월세가 900유로가 넘는데 30대 미만 청년층은 월 평균 임금이 1천300 유로에도 못 미치는 사람이 많은데 비록 몸 하나 누울 작은 주택이라도 월 200유로에 임대한다니 저소득층은 환영한다. 캡슐 주택은 2.4㎡ 넓이로 1평도 안 된다. 침대, TV, 수납공간 등이 있으나 주방과 욕실은 공용이다. 월 최저 소득이 450유로인 25~45세 연령층만 이 캡슐 주택을 임대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 당국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 -묘지에 있는 '관' 같다며 비난한다- 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한다. 건설사는 사람을 거리로 내모는 것보다 이런 캡슐 주택이라도 있는 게 낫다며 건설을 강행할 태세라는데 바르셀로나의 캡슐 주택 건설 전쟁을 두고 볼 일이다.
이 소식과 함께 같은 날 들린 기이한 뉴스를 보면 미국 실리콘밸리의 갑부들은 93㎡(28평)나 되는 대형 벙커 주택을 만들어 뉴질랜드로 옮긴 뒤 지하 3m 깊이로 파묻었다고 한다. 지하에 90억 원짜리 호화주택을 묻어둔 것이다. 벙커 주택은 미국에서 만든다. 최후의 날을 대비해 실리콘밸리의 갑부들이 뉴질랜드로 피난 가서 살 곳이다. 이 벙커 주택은 땅속에 숨긴다. 한적한 곳에 땅을 파고 묻는 작업에 2주가 걸린다. 지역 주민도 모르게 작업이 진행되는데 다 묻고 나면 집주인도 못 찾는다. 위성항법장치(GPS)로 찾아야 한다. 종말의 날에 뉴질랜드는 안전하다는 건가.
바르셀로나의 저소득 젊은 세대는 땅 위에 1평도 되지 않는 캡슐 주택조차 임대할 수 있느냐 마느냐로 몸부림치는데 미국 실리콘밸리의 갑부들은 땅속에 28평짜리 호화 벙크 주택을 여러 채 숨기느라 분주하다니 같은 날 세계인의 다른 모습을 그린 뉴스가 참 씁쓸하게 대비된다. 땅 위의 1평 집, 땅속의 30평 집. 가난은 불편하다. 주거 빈곤도 불편하다.
유럽에서 만드니까 캡슐 주택이라 부르지 1평도 되지 않는 집이라면 우리네 쪽방과 다를 게 있을까. 성인 한 사람 누울 공간에 TV 한 대. 참 고독한 집이다.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여행자용 숙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잠시 머무는 여행자 숙소로서의 2.4㎡ 생활 공간과 매일 사는 집으로써의 공간으로는 모든 게 다르다. 이 캡슐 주택을 짓는 회사에서도 <적절한 주택이 아니며 누구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노숙보다는 낫지 않냐는 거다.
물론 바르셀로나의 주거 빈곤이 별난 얘기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수준도 못 되는 주거 빈곤은 세계 모든 곳에 보편화된 얘기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은 많아도 확실하게 해결하는 이들은 어디든 드물다.
실리콘밸리의 갑부들이 호화 주택을 땅속에 꼭꼭 숨겨두는 이유라는 그 최후의 날이 돼야 땅 위의 주거 빈곤이 완전히 해결될까.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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