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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제발 내려가 주세요.

hherald 2018.04.09 19:11 조회 수 : 596

 

근대올림픽 제창자인 쿠베르탱. "모든 스포츠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한편으로 "아시아인, 흑인, 비백인계 선수가 올림픽에 나오는 건 보기 좋지 않다."는 망언도 남긴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가 열었던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대회는 고대올림픽을 표방한다는 정신에 따라 여자가 참가할 수 있는 경기 종목이 없었다. 그런데 고대올림픽 정신 운운은 핑계였고 사실은 쿠베르탱이 철저한 남성 우월주의자로 그는 '여성의 땀은 스포츠를 더럽힌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성은 경기장에서 뛰고 달리며 땀 흘리지 말고 시상식에서 도우미나 하라는 망언을 했으니 당연히 극복해야 할 스포츠의 성차별은 첫 근대올림픽부터 있었다. 꼭 이런 영향이라긴 뭐해도 1993년까지 IOC에 여성위원이 없었다는 것으로 비춰 이런 나쁜 영향은 100년이나 미친다고 해석해도 될까.

 

No dogs or women allowed. 개와 여성은 출입금지.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 4대 골프 메이저대회 가운데 하나인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을 주관할 정도로 유명한 세인트앤드루스 로열에이션트 골프장 앞에 260년 동안이나 붙어 있던 팻말이다. 여성이 그린을 밟기를 허용하지 않았던 이 골프장에 여성회원이 생긴 것은 2014년이다. 여성 회원을 받지 않는 유명 골프장은 미국, 일본에도 있다. 일본은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여성 골프선수가 차별받는다면 골프 경기장을 바꿀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일본골프협회는 남여차별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라는데, 골프장에 남아있는 가부장적 이념? 불쾌하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상금에 남녀 차이가 있다. 그나마 테니스가 남녀평등 스포츠로 꼽힌다. 테니스의 남녀차별을 당연시하는 쪽은 남자는 5세트, 여자는 3세트 경기를 하며, 남자 경기에 관중이 더 많다는 이유를 대고 남녀차별이 불공정하다는 쪽은 우승상금에 차이를 두는 것은 심각한 성차별로 남자 경기보다 시청률이 높고 관중이 많은 여자 경기가 많다고 주장한다.

 

어쨌거나 세계 4대 테니스대회는 남녀 우승 상금이 똑같다. 처음부터 그런게 아니고 1973년 윔블던 대회에서 열린 남녀 성대결 이후 상금이 같아지기 시작했다. 미국 여자 테니스 선수인 빌리 진 킹과 남자 테니스 선수 바비 릭스가 겨룬 성 대결에서 빌리 진 킹이 승리했다. 이날의 승리로 여자보다 8배나 많던 상금이 같아졌다. 빌리 진 킹이 윔블던에 흘린 땀이 테니스의 성차별을 없앴다.

 

경기장에 여성이 못 들어가는 대표적인 경기가 일본 국기인 스모다. 스모 경기가 벌어지는 모래판을 도효土俵라 하는데 여성의 진입을 철저히 금지한다. 일본 역사서에 스모가 시작된 것이 642년이라는데 약 1천400년 넘게 도효에 여성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2007년 도쿄 경기장에서 한 여성 관중이 경비원을 밀치고 도효에 기어올랐다. (당시 스모 모래판은 지상에서 약 60㎝ 높이다) 심판과 주변 사람들이 이 여성을 즉시 끌어내렸고 일본스모협회 측은 <스모 경기의 경계를 침범하지는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일본 언론은 "여성이 도효에 올라간 것은 사실이니 여성의 도효 입장을 금지한 1천400년 전통이 무너졌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었지만, 여성은 여전히 스모 모래판을 밟을 수 없다. 그래서 스모에서 시상을 할 때 상을 주는 쪽이 여성이라면 시상식을 씨름판에서 하지 않고 도효가 아닌 통로나 모래판 밖에서 한다. 도대체 전통이란 것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려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듯 이 질기고 이해하기 힘든 여성차별의 전통 때문에 이번에 교토 스모 경기에서 구시대적 여성차별이 또 발생한 것이다. 개회식 축사를 하던 시장이 갑자기 쓰러져 응급조치(심폐소생술 : CPR)하러 씨름장에 들어온 여성 의료진에게 장내 아나운서와 심판이 "여성은 씨름판에서 내려가 주세요"라고 한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씨름판에서 내려가 주세요>라고 했다는데 과연 씨름판에서 내려가야 할 것은 무엇이며 누구일까.

 

내려가 주세요. 제발 스포츠에서 사라져주세요.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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